Page 8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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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으로서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고 공부도 다

                시 하고 수련도 다시 하면서 급기야 1860년 4월 5일 깨달음을 얻고 동학을
                창도한 거죠.

                   그런데 제가 수운 선생을 인상 깊게 보고 주목하는 것은 수운이 그 당시
                천상문답을 통해서 ‘나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어. 깨달았어. 이제 내가 하늘

                을 대체하는 존재야. 다 나를 따르라’ 라고 했다면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
                만 사이비 교주가 됐을 것 같아요. 근데 이분은 ‘내가 진짜 들었나? 하느님
                소리를 진짜 들었나? 저분이 상제라고 그랬는데 진짜 상제 맞나? 오심즉여

                심, 내 마음이 당신 마음이라고? 내가 하늘을 모시고 있다고?’에 대한 의심
                을 하신 거예요. 수운은 기존의 성자들과 또 다른 차원인 거예요. 그 분은

                ‘천상문답’에 대해 의심을 하고 다시 공부를 해요. 그 기간이 1년 2개월이에
                요. 그 시간 동안 계속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체험을 했다는 것이 주목할 부

                분이라고 봅니다.



                최원호: 흔히 동학하면 학자들 중에서도 당시 조선 사회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유·불·도를 합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시 서학으로
                불렸던 천주교까지도요. 이런 의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형진: 예. 흔히 유·불·도 3교를 합쳐서 동학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들은 동학이 마치 비빔밥 종교인 것처럼 오해들을 해요. 그게 아니라 최치

                원의 난랑비 서문에 나오는 풍류도의 ‘포함삼교(包含三敎)’의 ‘함’자가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듯이 동학은 무극대도로서 그런 주요한 내

                용들이 이미 그 안에 다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나라를 종교 백화점이
                라고 하는데 종교 분쟁이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으로 볼 때는 서

                로 대립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런 것이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처
                음에 동학을 무극대도로서 선포하지만 약간의 믿음체계도 제시하잖아요.
                주문(呪文)이나 영부(靈符) 등을 말한다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동학이 당시

                에는 종교가 아니었어도 종교적 발전을 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초종교가
                됐지만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종교적 심성이 강한 나라도 없다고 생각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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