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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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중심에 최재형이 있었다. 이 모임이 발전해 대한국민의회인 최초의 임시
                         정부가 생겼다. 대한국민의회의 의장은 문창범이었다. 문창범은 최재형과

                         함께 우수리스크 한인들의 양대 산맥으로, 러시아에 사는 한인들은 최재
                         형을 자신들의 대부라 칭하고, 문창범은 우리들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최

                         재형은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을 맡는다. 대한국민의회는 곧바로 임시
                         정부 대표로 윤해와 고창일을 파리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최재형기념관내 흉상앞에서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과 함께




                           한편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무장투쟁보다 외교로 독립을 이루어
                         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해에서 비교적 안전한 프랑스 조계지 김신부로에

                         서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가 열린다. 의정원 회의에 참석한 독
                         립운동가들은 모두 27명이었다. 회의는 밤을 새우며 다음 날 아침까지 꼬

                         박 24시간이 걸렸다. 이 회의에서 국호를 정하고, 임시헌장을 만들고, 초
                         대 내각을 결정하여, 바로 다음 날인 4월 11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발

                         표했다. 국호는 대한제국을 잇는 정부라는 뜻으로 대한으로 하고, 백성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으로 민국을 결정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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