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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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미국 대통령은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약소국가들이 스
스로 독립할 수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선포했다. 이 소식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앞다투어 독립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독립
선언은 무오 독립선언이었다. 1919년 2월 1일 만주에서 김좌진, 신채호,
박은식, 안창호, 이동휘, 이승만 등 39인이 독립을 선언했다. 조소앙 선생
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는 “일본은 국제법규의 악마이고 인류의 적이다.”
라고 되어 있다.
뒤이어 일본 동경의 히비야 공원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했다.
바로 2.8 독립선언이다. 2월 8일 동경의 유학생들은 YMCA 강당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기로 하고, 히비야 공원에서 만세를 불렀다. 유학생들은 각
국 대사관과 국회의원 총독부 등 일본의 여러 신문사에 독립선언문을 발
송했다. 이광수는 선언문 작성 후 상하이로 몸을 피했다.
국내에서는 3월 1일 고종의 인산일(3월 3일)을 맞아 전국에서 모인 인파
들과 탑골공원에 모여있
던 학생들을 시작으로 전
국으로 만세운동이 퍼져
나갔다.
민족대표 33인은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
려 했으나, 운집한 학생
들과 일본경찰이 맞붙으
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
을 우려해 태화관에서 독
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바
로 총독부에 자진해서 잡
혀갔다.
3.1만세 운동은 두만
강을 넘어 러시아 블라디
탑골공원의 만세운동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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