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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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말씀해 주시죠.
            조인래: 결국은 조소앙 선생님의 방점은 정부를 세우자는 것이잖아요. 그

            런데 뭔가를 하려면 동기부여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기획했던 것이 무오
            (1918)년에 길림에서 작성한 「대한독립선언서」예요. 「대한독립선언서」가 말

            하자면 조소앙 선생님 철학인 삼균주의 배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
            는 이게 1919년 3.1운동 이후에 나왔다고 하는데요. 39인의 「대한독립선언

            서」가 3.1운동 이전에 썼다는 게 <대공보>라는 기사에 나와요. 그리고 「대
            한독립선언서」는 무력투쟁을 외쳤거든요. 39명은 대부분 한반도 밖에서 활
            동했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검거될 확률이 적어서 무력투쟁을 외친 것이죠.

            그 이후 조소앙 선생님이 동경으로 가서 그걸 전달을 하죠. 그리고 동경 유
            학생을 중심으로 한 「2.8독립선언서」가 나왔죠. 굉장히 상징적인 것이었

            죠. 일제의 수도 한복판에서 외친 거니까요. 근데 거기에서도 최소 인원을
            가지고 선언을 한 거고. 그 뒤에 한반도 전역에서 3.1독립선언이 비폭력 운
            동으로 나온 것이죠. 그러니까 체계적으로 진행된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정말 피의 두루마기로 쓴 독립 혈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민중들의 희
            생이 없었으면 4월 11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10

            일부터 밤새 토론해서 헌법 발표하고 국가 발표하고 의정원도 하고 굉장히
            체계적으로 설계를 해 나갔어요. 임시헌장 10조는 이미 길림에 있을 때 써

            두셨다고 해요. 이미 내다본 것이죠.



            최원호: 잠시 말씀하셨지만 「대한독립선언서」에서는 무장 투쟁으로 떨쳐 일
            어나라는 그런 주의를 강조하시잖아요.
            조인래: 일가(一家)를 희생해라. 그래야 옥토(沃土)를 우리가 후손들한테 물려

            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논리죠. 근데 조소앙 선생님이 그걸 먼저 행동을 해
            요. 저희 할아버지가 6남 1녀로 7형제인데요. 저희 증조할아버지, 할아버

            지, 당숙 3대가 독립운동을 하는데요. 여기 와서 돌아가신 분이 몇 명 없어
            요. 그러니까 내가 일가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

            까? 조소앙 선생님은 글도 글이지만 행동으로 옮기신 분이죠. 저는 그게 가
            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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