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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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에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서 공부하고 그랬던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삼균주의 소리가 다시 나니까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죠.



            최원호: 조금 전에 <조소앙기념사업회>는 ‘대동단결선언 100주년’ 되는
            2017년에 창립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바로 1917년에 「대동단결선언」이 발

            표되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빼고는 잘 모르실 텐데요. 그런데 「대동단결
            선언」이 실제로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초석이 된 선언이잖아요. 설명을 좀
            해주시죠.

            조인래: 1917년도 발표된 「대동단결선언」의 의미는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표방한 최초의 독립선언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국에서 민

            국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주권 불변론’이라는 걸쭉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호가 거기서부터 탄생을 하거든요. 선언서 내
            용을 보면 소위 ‘국치일’이라고 말하는 1910년 8월 29일은 ‘신한국’ 최초의

            날로, 황제권 소멸로 ‘민권’이 발생한 날로 선언하죠. 그리고 한인(韓人) 사이
            의 주권을 주고받는 것은 역사상 불문법의 국헌으로 비한인에게 주권을 양

            여한 것은 근본적으로 무효라고 선언을 합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임시정
            부를 설립하겠다는 취지의 선언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안창

            호 선생한테 보내는 편지에도 있어요. 상해에서 우리 정부를 조직해야 된다
            는 내용이 있거든요. 자금이 소요되니 생각을 해달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지

            지를 못 받았죠. 젊은 조소앙으로서는 좀 실망을 많이 했죠. 사실 그때만 해
            도 독립운동가들이 통합이 안 되고 각자 지역별로 노선에 따라서 군림하는
            형태였거든요. 그거를 대동단결을 해서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서 전략도 짜

            자고 한 건데 그걸 못 해서 실망스러운 상태에서 길림으로 들어가셨죠. 그
            렇지만 결국 1918년에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서」 초고를 쓰시고, 그걸 바

            탕으로 1919년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가 나오게 된 거죠.



            최원호: 「대동단결선언」에서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이 방금 말씀하셨지만, 삼
            보(三寶)에 대한 얘기입니다. 흔히 국가의 3요소로 영토, 주권, 국민을 얘기하

            는데 그걸 삼보라고 표현하면서 1910년 8월 29일은 국치일이 아니라 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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