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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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배달나라다. 배달나라(배달국)가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배달을 조선으
로 인식할 수는 있으나, 배달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배달국의 기록과 그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 배달학교, 배달의숙
(길림성)통화현 배달학교
1920년 11월 3일 중국 길림성 통화현 반랍배촌에 배달학교가 있었다. 배달학교
는 이시영, 이회영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의 지원으로 문을 연 민족 교육의 본산이
었다.
배달학교 문하생이었던 조경연은 ‘그리운 스승’이란 후일의 회고에서 배달학교의
교사였던 청년 이시열의 참모습을 생생하게 말해 준다.
선생님을 모시게 된 것은 내 나이 9살(1918), 중국 봉천성 통화현 반랍배에
있는 배달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이다. 그때 우리들은 선생님을 재미있고도
또 엄격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에게, 이 학교
는 배달학교이고 배달민족을 만드는 곳이라고 강조하셨다. 그 말씀이 나의
어린 뇌리에 꽉 박혀 언제고 망각한 적이 없었다.(1992. 9. 배달학교 조경연)
이 배달학교에 일본군 헌병대가 들이닥쳤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참패
한 만주 주둔 일본군이 조선인 박멸을 목표로 펼친 경신대토벌 작전을 벌인 것이다.
당시 교직원 7명은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참하게 살해당했고, 배달학교는 폐교되었다.
배달의숙
1915년(또는 1918년) 오동진은 석주 이상룡과 함께 자금을 출연하여 관전현에 민족
학교 ‘배달의숙’을 설립했다. 그 비용(단학회보)은 서로군정서 총재 이상룡 선생이 보
조했고, 광복군 제1영 사령장 오동진 장군이 교당과 전토를 사서 기증한 것은 특기
할 일이다.(『대배달민족사』 5권 40쪽 참조)
의숙은 공익을 위하여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기관을 말하는데, 서전의숙(瑞甸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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