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월간 대한사랑 3월
P. 9
2024. 03
방문한 게 처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독립유공자유족회 초청
이 와서 다시 가봤더니 참 비참하더라고요. 독립유공자유족회가 뭘 하고
있었냐면 안중근 의사 만화를 팔고 있더라고요. 벌써 40년 전 일인데. 제
가 그 때는 쌍용건설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왜 이런 걸 하십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사무실 운영비가 없다는 거예요. 돈 낼 사람도 없고 다 가난하
게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최원호 : 참 가슴 아픈 얘기네요.
김삼열 : 그렇죠. 제가 “이걸 어떻게 파십니까?” 물어보니 각 학교에 찾아
다니면서 안중근 의사 만화를 사달라고 부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거 하지 마십시오. 독립운동 선열들이 나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후손
들이 이렇게 만화 팔고 다니면 지하에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느냐?” 그랬어
요. 그때 저보고 벌컥 화를 내면서 “그럼 사무실 문 닫으라는 얘기냐.” 그
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무실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그때 돈으로
월 25만원인가 그랬어요. 그러면 제가 밥값하고 사무실 비용은 매달 후원
하겠다고 했죠. 그때부터 유족회에 돈을 몇 십 만원씩 내기 시작하면서 유
족회 이사가 되었죠.
최원호 : 유족회에 몸담게 된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셨군요.
김삼열 : 맞아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간을 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사가 되고 3, 4년 있다가 부회장을 맡았는데 그때부터 유족회 행사에 제
시간을 뺏기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회사까지 그만두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족회 회장까지 맡게 되었는데 2000년도인가에 도저히 제 일이
안되어서 유족회 회장을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부회장을 내세우고 사무
실 지원만 했죠. 그런데 그것도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그 때 돈 몇 천만 원
을 들여서 유족들 101명인가 모시고 금강산을 갔어요. 금강산에서 총회를
열면서 임원들한테 “나는 유족회 회장을 더 이상은 못하겠으니 놓아 달라.”
고 했죠. 그렇게 안 하는 걸로 해서 사의를 표하고 마지막 공사를 봤는데요.
그 뒤에 4~5개월 있다가 사무실 문을 닫는 거예요. 월세를 못 내니까 집주
인이 와서 문에 열쇠를 채워버리고 간 거예요.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