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월간 대한사랑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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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3
자에 논란이 있다? 그 논란이 있다는 내용 그리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김
을 들여다보면 당시 조선총독부 집계가 있 병조 선생이 1920년에 쓴 『한국독립운동
다. 그들은 3.1운동 사망자가 553명이라는 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이 있는데 여기에 기록
기록을 남겼다. 우리 측 사망자 수치와는 된 3.1운동 사망자 수는 6,670명이다.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수치다. 이와 같이 우리 측의 여러 조사를 종합해
우리 측의 사료는 세 가지가 있다. 1919 보면 사망자는 약 6,500명에서 7,500명 사
년 9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 이다. 1만 명 이상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지
편찬회가 상해에서 펴낸 『한일관계사료집 만 대략의 사망자 숫자는 7,000명 전후가
(韓日關係史料集)』이다. 이 책은 국제연맹회의 된다.
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 이에 비해 조선총독부는 3.1만세시위에
한 관찬서 자료집이다. 여기에 적힌 3.1운 조선인은 총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
동 사망자 수는 6,821명이다. 정에서 553명이 사망, 12,000명이 체포되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이 1920년에 발 었다고 공식 집계를 기록해놓았다. 사망자
표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서울에 있 를 553명이라고 축소한 것이다.
는 통신원의 기록을 토대로 “창으로 찌르 일본제국주의가 사망자를 애써 축소한다
고 칼로 치는 것이 마치 풀 베듯 해서 즉사 는 것은 여러 사례가 있다. 1923년 관동대
한 사람이 3,750여 명이고, 중상을 당해 며 지진 학살자 수를 상해임시정부에서 발간
칠 후에 죽은 사람이 4,600여 명”이라고 전 하는 <독립신문>에서는 조사 결과 6,661명
하고 있다. 사망자는 총 7,509명이다. 이라고 하였으나 일본 사법성은 233명, 내
한일관계사료집 한일관계사료집 한국독립운동사략 조선총독부집계 국사편찬위원회
시위건수 통계없음 1,542명 통계없음 848명 1,692명
참가자수 168만명 202만명 136만명 58만명 103만명
사망자수 6,821명 7,509명 6,670명 553명 725~934명
부상자수 45,163명 15,961명 14,610명 1,409명 통계없음
체포자수 49,511명 46,948명 52,770명 통계없음 통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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