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월간 대한사랑 3월
P. 33
2024. 03
어느새 성장해 있던 국민들의 의식
조선 사람들의 의식이 크게 깨어난 해는 1894년이다. 동학혁명 당시 동
학군들이 정부에 제시한 폐정개혁안의 주 골자는 반외세 반봉건으로서 평
등한 사회의 건설이었다. 3.1운동이 거족적인 항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새 성장해버린 민중들의 각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나라가 무너지
고 중화민국이 탄생한 신해혁명,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러시아혁명, 그리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우드로 윌슨이 주
창한 민족자결주의 같은 변화하는 국제정세가 배경을 이루었지만, 백성들
의 각성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기미독립선언
2.8 독립선언서 작성 이후 예관 신규식은 동제사 요원들로서 곽경, 선우
혁 등을 국내의 손병희, 이승훈 등에게 밀파하여 3월 1일 독립혁명의 거사
에 참여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보천교 등 국
내의 모든 종교계가 합심하여 독립선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목표는 평화적 선언이었기 때문에 소요상태를 염려하여 태화관에서 독립선
언을 했다. 정작 탑골공원 팔각정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람은
당시 학생이었던 정재용 군이었다. 격앙된 수천 명의 학생과 군중들은 만세
를 외치며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약 3개월 동안 전국에서 전
개되었다. 서울에서 3.1운동을 기획하던 인물들이 독립선언서를 각 지역으
로 보내왔을 뿐만 아니라, 서울과 평양의 만세운동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열기를 고향에 전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