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월간 대한사랑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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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3







                            치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권중현을 노렸던 결사대만이 실행에

                            옮기게 되고, 이마저도 부상을 입히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런 홍암이 대종교라는 종교를 통해 구국운동에 나선 건 백전노인에게

                            건네 받았던 삼일신고와 『신사기』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삼일신고는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 허공(虛空), 2장 일신(一神), 3장 천궁(天

                            宮), 4장 세계(世界), 5장 인물(人物) 편으로 이루어져 우리민족 사상의 핵심을
                            알 수 있게 되어있다. 홍암은 1909년 1월 15일 중광절이라는 이름으로 단
                            군교를 선포했다. 일제의 종교철폐령이 떨어지자 1916년 8월 15일 폐식법

                            (閉息法)으로 자결하였다.



                            이기와 단학회
                              해학 이기는 1848년 전북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서 태어났다. 12~13

                            세경에 칠서를 읽었고, 15세 향시에 나아가면서 뛰어난 재주와 명성이 여
                            러 고을에 알려졌다. 성리학 외에도 천문, 지리, 음양, 복책, 병복 등 다양

                            한 학문을 섭렵하였다. 석정 이정직, 매천 황현과 함께 호남 3재라 일컬어
                            졌다. 1894년 동학혁명 때 해학은 직접 전봉준을 찾아가 서울로 올라가

                            민씨 일당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자는 적극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을사늑약 후 해학은 1906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대한자강회 월보>

                            를 발행해 국민 계몽에 앞장섰는데, 편집위원으로 장지연, 윤효정, 정운복,
                            이기, 현은, 양홍묵, 여병현, 남궁훈, 임병환, 박은식을 두었다.
                              해학은 단군교 중광식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평소 나철 선생과 삼신설

                            (三神說)의 정의, 신시개천, 단군건원 등에서는 의견통일을 못하여 1909년
                            3월 16일 단학회를 만들었다. 넉 달이 지난 1909년 7월 13일에 이기 선생

                            은 나라를 뺏긴 것에 분개하여 절식으로 삶을 마감했다.



                              대종교와 단학회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의 독립운동은 철저한 역사의
                            식과 사상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뿌리를 바로 세워 온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토양을 갖추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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