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월간 대한사랑 24년 2월호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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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본기」 원문의 내용은 온조를 백제의 군 등의 한사군 지역을 반드시 통
시조를 삼은 것이고, 주석의 내용은 비류를 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록 중에
백제의 시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 는 소서노 세력과 한사군 세력이
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백제의 시조 충돌하거나 하다못해 어떤 식으로
는 소서노 여대왕이고, 소서노는 조선 역사 든 접촉했다는 내용이 없다.
상 유일한 여제왕(女帝王) 창업자일 뿐만 아니 『삼국사기』 「백제본기」<온조왕조>
라 또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건설한 자 에서도 그냥 “남쪽으로 갔는데 백
이다”라고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백제본 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라고
기」 원문에서는 비류와 온조를 주몽의 친자 만 나오고 경로에 대한 설명은 없
라고 하였고, 주석에서는 우태의 아들이고
다. 『삼국사기』 자체의 기록 미비
주몽의 양자라고 하여 백제 건국에 대한 다
의 한계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알 수 없다.
강단사학계 내에서도 「백제본기」의 내용에 의문을
품고 있는데, <나무위키>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
과 같다. 『환단고기』의 기록
비류와 온조는 결국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
그런데 『환단고기』의 「북부
고 패수(浿水, 필자주:강단사학계에서는 청천강으로 비 여기」와 「고구려국본기」의 기
정하고 있고 이병도는 예성강이라고 했다.)와 대수(帶 록을 보면 주몽과 소서노와의
水, 필자주:이병도는 임진강으로 보고 있다, 또 한반도의 관계, 백제의 기원에 대하여
불분명했던 사실들이 속시원
중간을 허리처럼 두른다고 하여 한강으로 보는 견해도
하게 풀린다.
있다.) 두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갔다.
겨울 10월(기원전 58년)에 고무서단
여기서 남하 과정이 조금 이상한
군께서 붕어하셨다. 고주몽(高朱蒙)
점이 있다. 소서노, 비류, 온조 등
이 유명(遺命)을 받들어 대통을 이
이 남하할 때 이를 추종하는 지지
으셨다. 이에 앞서 고무서 단군에
세력들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런
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는데,
데 졸본에서 미추홀과 위례성이
고주몽이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아
있는 한강 유역까지 가려면 낙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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