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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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의 기록



           하지만,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고구려 건국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동명왕 고두막한

           동명왕은 고주몽이 아니라 후기북부여(BCE 86~BCE 58)를 세운 고두막한을 말한

         다. 고두막한은 한무제가 북부여를 침략했을 때, 북부여의 4대 단군인 고우루(또는 해
          우루, BCE 121~BCE 87)가 이를 막아내지 못하자,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군을 물리치고
         졸본(卒本)에서 즉위하여 동명국(東明國)을 세운 인물이다. 동명은 고두막한의 자호(自
         號)로서 이 때문에 후기북부여를 졸본부여 또는 동명부여라고 부른다. BCE 86년 고

         두막한은 고우루(해우루)의 뒤를 이은 해부루(재위 BCE 87~BCE 48)를 제후로 강봉(降
         封: 작위의 등급을 낮추어 봉해줌)하여 차릉(岔陵)으로 옮겨가게 하니, 이곳이 지금의 흑
         룡강성 통하현(通河縣)으로 이를 동부여 또는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라고 부른다.
           동명왕 고두막한과 고주몽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연산군 때 문신인 김천령(金天
         齡, 1469~1503)은 자신이 지은 부(賦)에서 “동명왕이 왕업을 개창하시고, 주몽이 그 뒤

         를 계승하였다.(東明 創其緖業, 朱蒙 承其餘波)”라고 밝힌 적이 있다. 1922년에 발견된 연
         남산(淵男産, 연개소문의 셋째 아들, 639~701) 묘지명에서는 “옛날 동명왕이 기운에 감응
         하여 사천을 건너 나라를 여시고, 주몽이 태양빛으로 잉태되어 패수가에 도읍을 열었

         다.(昔者 東明感氣 踰㴲川而啓國, 朱蒙孕日 臨浿水而開都)”고 하여 동명왕과 주몽이 서로 다름
         을 새겨놓았다.



          고주몽의 출생

           『삼국사기』는 고주몽이 기원전 58년생이라 했는데, 『환단고기』에서는

         기원전 79년 임인(壬寅)년에 탄생하였다고 하였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주몽은 기원전 59년 동부여의 통하를 떠나 졸본에 이르러 고무서 단군

         (재위 BCE 60~BCE 58)의 딸인 소서노(召西弩)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고, 기
         원전 58년 졸본에서 북부여 7대 단군으로 등극하며 다물이라는 연호를
          쓴다. 『삼국사기』에서 고주몽이 태어난 해는 『환단고기』에서는 단군으로

          등극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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