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P. 52
동북공정 분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말갈을 문화사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겠다. 문화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체가 있고 관계가 파악이 되었다면 말갈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고유한 문화를 이해해야 제대로 된 해당 집단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국내학계에서는 말갈문화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고구려나 발해문화와 비교해 공통점이나 차이점 등을 소개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발해의 기층문
화인 말갈문화, 향후에 금과 청제국을 세운 여진족이나 만주족 문화의 원류가 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지만 사료 부족과 현재 중국 또는 러시아 영토라 유적ㆍ유
물 발굴 조사의 어려움 등의 사유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사료 부족은 합당한
이유를 찾은 것에 불과하고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주변국들의 연구 동향은 다르다. 러시아 및 중국 학계에서는 말갈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
으며, 일본 학계에서 조차도 발해 문화와 오호츠크문화의 관계를 중심으로 말갈연구를 지속적으
로 해왔다.
국내학계에서 말갈문화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주된 이유는 연구자들이 많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우리 학계의 연구 경향이 발해 문화가 고구려 계통임을 강조하는
반면에, 중국 학계에서는 발해 문화가 고구려 계통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갈문화를 제시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내학계에서는 발해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중
국의 입장에 맞서서 발해의 말갈문화를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학계에 보고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후속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해의 유적 및
유물에서 말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강인욱은 ‘말갈문화’ 라는 개념은
실제 말갈인의 문화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간의 발굴을 통해 상층부와는 이질적인
문화 계통을 의미하는 고고학적 문화로 통칭된다면서 실제로 말갈과 발해의 민족 개념이 분명하
게 고고학적 문화로 구분되는 지에 대한 검증 없이 선험적인 수준에서 두 문화의 구분을 곧 민족의
분리로 개념 지어왔다고 주장하였다. 55) 이렇듯 고구려 이후부터 말갈문화가 생성되어 발해를 거
쳐 후대인 여진족까지 말갈문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말갈문화는 발해 연구에 선
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갈 관계사 연구를 통해 말갈을 재발견 할 수 있었다.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풀꽃들을
우리는 야생화라고 부른다. 풀꽃의 생명력은 정말 경이롭다.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척박한 환경
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말갈이 그러한 존재였다. 분명 독립된 문화
를 갖고 고유한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으며,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
으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55) 강인욱, 「靺鞨文化의 形成과 2~4세기 挹婁ㆍ鮮卑ㆍ夫餘系文化의 관계」, 『高句麗渤海硏究』 33輯, 고구려발해학회,
2009.03.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