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3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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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에 대한 연구 전준호
일본에 보낸 『속일본기』의 국서에서도 확인된다. 11) 그리고 대조영(大祚榮)에 대해 사료에서는 속
말말갈로 기록하고 있는 데 이들은 여러 말갈 부족 중에서 고구려에 이른 시기에 복속이 되어 고구
려에 속민이 된 자들이다. 또한 발해에 대해서도 발해, 말갈 혹은 발해말갈 등으로 기록하여 발해
와 말갈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별종(別種)이라는 것은 일종의 방계(傍系) 내지 지파(支
派)라는 계념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부여의 별종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부여의 방계라는 의미
이다. 대조영을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한 것도 고구려의 방계손이라는 말이 된다. 또한 말갈(靺鞨)
의 의미에 대해 해석해 보면 말(馬)을 의미하는 마한(馬韓)과 뜻이 통하고 ‘한’은 왕을 의미하는
‘간’, ‘칸’과 같은 의미로서 12) 말갈은 마간(馬汗)으로도 해석되고 한(韓)을 일본어 발음으로는 가라
(から)라고 하여 말갈은 마가라(馬から)에서 파생된 말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와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3) 또한 신라의 대학자인 최치원이
“고구려는 마한이다. 14) ” 라는 기록과도 그 의미가 서로 통한다. 즉 고구려, 마한(馬韓), 말갈(靺鞨)
은 서로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말갈의 선조를 칭할 때 조선(朝鮮)의 이명인 숙신(肅
愼) 15) 으로 칭한 것으로 볼 때 그들도 조선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계통을 크게 구분하자
면 주몽과 같은 부여계 출신과 대조영과 같은 숙신계로 구분할 수 있다.
2. 고구려와 말갈의 위치
말갈의 위치를 찾는 데 중요한 근거는 바로 고구려의 위치이다. 사료에 기록된 말갈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면 고구려의 북쪽에 있다고 사료에 기록하고 있다. 16) 즉 말갈의 위치를 파악
하기 위해 중요한 기준이 바로 고구려의 위치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고구려의 위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 까? 현재 국사학계의 통설의 고구려 중심지인 졸본의 위치는 중국의 환인(桓仁)
지역의 오녀산성(五女山城)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다.
어느 사료에도 고구려의 졸본이 환인의 오녀산성에 있다는 기록이 없다. 이런 잘못된 위치 비정은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자인 도리이 류조(鳥居龍蔵),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가 정립한 식민사
학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학설로서 아직도 이 주장이 학계의 통설로 받아들여지
고 있다. 17) 하지만 우리의 사서인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의 위치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데 그
11) 『속일본기』권10, 신구 5년(728) 봄 1월(갑인), 무예(武藝)가 아룁니다...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
(習俗)을 가지고 있습니다.
12)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盖國語及蒙古語 皆謂君長為汗 韓與汗 音相混
1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구려어(高句麗語), 고구려어는 퉁구스어 및 일본어와 가까운 면이 있음이 지적되기
도 하였다. 부여어군은 한어군보다 알타이 제어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 『삼국사기(三國史記)』 「최치원 전」馬韓則高麗卞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
15) 말갈의 계통을 말할 때 숙신-읍루-물길-말갈 로 계통이 이어졌다.
16) 『북사(北史)』 「열전(列傳)」 물길(勿吉), 勿吉國在高句麗北, 一曰靺鞨.
17) 임찬경,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에 관한 검토」『선도문화』 20, pp.322-3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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