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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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봉집보(奉集堡) 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기존 통설의 고려 국경은 매우 잘못되었음을 말해주고 있
                                   5)
                 다. 그리고 이러한 고려 강역의 내용은 이전의 국가인 신라(新羅)와 발해(渤海)의 국경까지도 다시
                 금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고려는 신라의 강역을 계승한 나라이므로 이를 근거로 신라

                 의 강역이 더 넓어지게 되면 결국 이는 발해의 국경선과 강역 문제까지로 확대되게 된다. 이를 근거
                 로 발해의 강역을 다시 검토해 보면 해동성국의 대제국으로 여겨지는 발해의 강역은 2천리도 안

                 되는 협소한 소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발해의 강역을 사방 5천리로 기술한 중국의 『신당서(新
                              6)
                 唐書)』 의 기록 과도 전혀 맞지 않다. 즉 이를 통해 현재 발해의 강역과 국경선이 심각하게 왜곡되
                 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이런 잘못된 발해 강역을 바로 잡기 위채 여러 문헌사료의 내용들을
                 재 고찰하여 실제 발해의 강역을 다시금 비정하도록 하고자 한다.



                 Ⅱ. 사학계 통설의 발해 강역에 대한 문제점




                   발해 강역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최근 새롭게 비정된 고려 강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인하대 고조선 연구팀에 의해 보고된 내용으로 사학계의 기존 통설의 고려 강역과 문헌 사료를 통
                 해 다시 비정된 고려 강역을 비교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이를 통해 보면 고려의 북방 강역이
                                                                      7)
                 상당히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렇게 고려 강역이 왜곡되었을까?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일

                 제의 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연구 결과를 아직까지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한 현 사학계의 문제

                 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이러한 연구 결과는 고려가 계승한 신라와 그 북쪽에 있는 발해
                 강역까지도 모두 재검토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의 발해 강역은 고려와 신라의 강역을 기
                 준으로 비정한 결과이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험진(公嶮鎭),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공험진에
                 는 내·외방어소(內外防禦所)가 있었는데, 내방어소는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자리에, 외방어소는 두만강 북쪽 700리
                 에 있는 공험진에 두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5) 이덕일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두 개의 철령”, 『경기신문』, 2021.05.17.
                 6) 『신당서(新唐書)』 「北狄列傳」 渤海, 地方五千里, 戶十餘萬, 勝兵數萬, 頗知書契, 盡得扶餘·沃沮·弁韓·朝鮮 海
                 7) 박종환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고려 국경선은 랴오닝성 랴오양 부근", 『CBS노컷뉴스』,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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