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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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남한 강단 가야사학계 김수지
학계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다음 연민수(延敏洙)의 「日本書紀 神功紀의 史料批判」에
서도 쓰다의 영향력이 잘 드러나 있다.
『日本書紀』 중에서 역사적으로 복원이 가능한 시기는 神功紀 이후 이다. 즉 신공기는 사료적 재
구성을 통하여 역사적 고증을 할 수 있는 최초의 사료군이라 할 수 있다. 『日本書紀』 에 있어서
신공기는 역사시대의 사실을 말해주는 사료로서 그 이전의 전설적 내용을 담은 天皇紀 와는 분
명 一線을 긋는다. 40)
연민수 역시 일본 고대사에서 신대사 부분들은 허구이고 “역사적 복원이 사능한 시기는 신공기
이후” 부터라고 쓰다의 견해를 따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시간의 문제’에서 서기 4세기 이후 부터
역사적 사실이며 그 전의 시간은 허구라는 것이다. 위의 논문은 또한 『일본서기』 ‘신공기’에서 언급
되는 지명들을 한반도 남부에 위치비정하는 것에 어떤 ‘공간에 대한 문제’ 의식을 연민수 역시 가지
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연민수는 『일본서기』 ‘신공기’의 기년이나 서술방식, 내용에 문
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일본서기』 ‘신공기’에 대한 사료비판을 하고 있지만, 기본 전제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쓰다와 인식을 같이 한다. 연민수가 『일본서기』 ‘신공기’ 내용
에서 주장하는 것은 ‘신공기의 가야 7국 평정의 주체’가 ‘일본’이 아니라 ‘백제’라는 것이다.
즉, 신공기와 계체기의 가운데 가야관계 기록은 산발적이며 불투명하다. ..가야제국의 구체적
국명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계체기에 들어서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공기와 계체⸱ 흠명기와의 무
언가의 관련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신공기의 가야 7국 평정의 주체는 일본이 아니라
백제이고 그것은 당대의 사실이 아니라 후대의 백제측의 현실과 기대감이 표출한 것이다. 41)
이와 같이 연민수는 ‘백제’가 ‘가야’를 정벌한 것을 『일본서기』 편찬자가 일본 주도로 기술한 것
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비록 다른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를지라도 주체를
‘백제’로 바꿔보았다는 큰 틀에서는 천관우(千寬宇) 또는 김현구(金鉉球) 의 주장과 비슷하다. 42)
40) 연민수, 「日本書紀 神功紀의 史料批判」, 『일본학』, 15호, (1995), 75-111, 108쪽.
41) 연민수(1995), 110쪽
42) 박장우, 「‘임나 가야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한대학교 석사논문, (2021), 12~13쪽- 천관우는 백제 군사령부설
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1970년대 주장한 설로 임나일본부의 설치 및 지배 주체를 야마토왜가 아닌 백제로 보는 설이다.
즉,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를 통치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령부라는 것이다. 또한, 천관우는 『일본서기』 신공
49년조 가라 등 7국 정벌 기사를 서기 369년에 일어난 사실로 보고 그 주체를 백제로 보았으며, 백제 근초고왕 재위
24년 군사를 보내 낙동강 유역 및 전남 해안지역을 점령하여 가야제국을 백제 세력권에 편입했다고 주장했다.김현구는
임나일본부를 가야 지배를 위한 백제의 군사통치기관으로 본 천관우의 학설을 이어받고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야마토왜
와도 연관지어 ‘왜인용병설’을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왜인용병설의 요지는 야마토왜와 한반도 제국과의 관계가 임나
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백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백제는 야마토왜에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야마토왜로부터 왜인 용병을 지원 받아 임나일본부를 통치하고 이를 또한 ‘왜계 백제관료’가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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