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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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분과 1


                 로 본다면 석탈해는 한반도의 남부와 먼 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야국과 대마도, 대마도와 이

                 끼섬, 이끼섬과 축자국 사이의 거리를 1천리로 본 기록으로 본다면 기록상 굳이 한반도가 아닌 왜
                 국을 기점으로 그 나라의 위치를 설정한 이유는 한반도보다 왜와 가깝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56)

                 이는 탈해의 출생지가 한반도보다는 일본열도에 좀 더 가깝거나 적어도 일본열도에 소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류 흐름으로 보는 지도상의 임나가랑의 다파나국 비정 위치 범위
                                                        (자료출처 :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석탈해가 어릴 때 해류에 맡겨진 배를 타고 금관가야를 거쳐 아진포로 이동할 수 있는 출발지는

                 한반도 남부 해안과 대마도 서북쪽이다. 대마도 위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타지 않으면 탈해는 열도
                 내부나 태평양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출신지가 어디든지 최종적으로 석탈해의 배의 위치는 한반

                 도 남부와 대마도 사이를 흐르는 해류지역인 것이다.



                 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其大
                 官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所居絕島, 方可四百餘里, 土地山險, 多深林, 道路如禽鹿徑. 有千餘戶, 無良田, 食海物自活, 乖船
                 南北市糴. 又南渡一海千餘里, 名曰瀚海, 至一大國, 官亦曰卑狗, 副曰卑奴母離. 方可三百里, 多竹木叢林, 有三千許家, 差
                 有田地, 耕田猶不足食, 亦南北市糴.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有四千餘戶, 濱山海居, 草木茂盛, 行不見前人.
                 56) 김선숙, 「新羅 脫解王의 出生地와 移住背景」.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82).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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