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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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분과 1


                 Ⅴ. 맺음말




                   본 고에서 조선총독부시기부터 현 한일 양국의 가야, 임나 관련학자들이 한반도의 임나존재의

                 증거로 활용한 기록인 삼국사기 강수열전의 임나가랑 기록을 중심으로 원문사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위치비정에 대해 논해 보았다. 이와 관련된 진경대사탑비의 임나에 관한 원문해석도 다른

                 문헌의 용례를 통해 다시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그동안 가야와 임나를 암묵적으로 등식화하여 동일
                 정치체제로 인식되도록 많은 기존 논문에서 인용한 『삼국사기』「강수열전」과 『진경대사탑비』의

                 원문사료는 오히려 가야와 임나가 전혀 다른 위치의 정치체제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료가 됨을 밝
                 혔다.

                   강수는 대가야나 금관가야국 사람으로 가야패망 후 사민정책에 의해 충주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대부분의 기존의 학술논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강수는 석탈해의 18세 후손으로 원래부터 신라왕
                 족의 후손으로 월성 석씨 족보에 그 존재가 완연히 드러났기에 가야와 연결고리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강수의 신본임나가랑인 (臣夲任那加良人)에서의 본(本)은 본관(本貫)을 뜻하는 것이기에 시
                 조인 석탈해의 창업지나 출생지를 뜻하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강수가 밝힌 자신의 뿌리인 본
                 (本)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을 토대로 본다면 한반도 외부의 밀접하거나 왜의 영역에 속하는

                 지역에 존재했던 다파나국이 임나가랑이라고 비정할 수 있다.

                   또한 진경대사탑비의 진경대사의 속성 신김씨와 흥무대왕 김유신과는 구체적 혈연 연결 관계가
                 있다는 기존 학계의 주장의 논거들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명백히 사료원문을 이해하지 못한 채,‘원
                 조遠祖’를‘ 먼 조상’으로 오역誤譯한 결과였음을 살펴보았다. 그렇기에 진경대사탑비의 임나는 가

                 야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가야와 임나를 동일정치체로 설정한 근본이유는 일본제국주의가 설정한 반도사관의 틀로 인한
                 필연적 거짓 설정이다. 한국사 시작에 있어 한반도 북부는 평양을 중심으로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낙랑군이 지배하는 정치체제였고 남부는 임나인 가야를 중심으로 백제와 신라를 복속시킨 일본의

                 임나일본부의 정치체제였다는 것              59) 이 조선총독부가 설정한 조선의 고대사 틀이었다. 그렇기에

                 한반도 북부의 낙랑군과 남부의 임나 비정은 같은 운명의 뜨거운 한국사 논쟁거리이며, 이를 어쩔
                 수 없이 고수할 수밖에 없는 기존학계에서는 고스란히 동북공정 논리를 옹호하고 견지해 주는 입
                 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한국사의 난제는 앞으로 낙랑의 변천                         60) 과 삼한사三韓史 정립,

                 그 중 마한馬韓의 재조명작업을 통해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본 연구를 통해 기존 학계가 한국 가야사와 일본서기 임나사를 동일화 시키고 나아가 그에 따라


                 59) 朝鮮史學會, 「朝鮮一般史(朝鮮史講座 2권)」, (朝鮮史學會發行, 1923). 233쪽
                 60) 복기대, 「한사군의 인식에 관한 연구1 - 설치와 교치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 -」, (한국몽골학회, 2017)
                 ; 복기대, 「한사군은 어떻게 갈석에서 대동강까지 왔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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