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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백제=예부여의 역사

후한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위치

예부여는 한나라 바로 옆에서 건국하였으므로 후한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예부여는 49년부터 후한에 조공하였다. 예부여는 111년 낙랑군을 공격한 후 바로 귀부하고, 167년 현도군을 공격한 후에도 174년 바로 귀부하는데, 이는 예부여의 위치상 漢에 귀부하지 않으면, 漢은 물론 고구려나 백제 선비 등 다른 세력에 의해 바로 점령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漢이 소국인 예부여를 놓아 두었던 이유는 다른 세력들을 통제하는데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단석괴의 지배

단석괴가 그 영토를 3부로 나누어서 그 중 동부가 우북평에서 요동까지인데, 부여와 예맥과 접한다. 여기서 부여는 예부여이고, 예맥은 고구려이다. 단석괴는 영토 내 호수에 물고기가 많아서, 이를 식량으로 활용하기 위해 왜인 천여가를 강제 이주시켜 물고기를 잡도록 하였다. 단석괴가 왜인들을 잡아간 곳이 예부여이다.

공손씨와 연합, 조위에 예속, 모용외의 공격, 서진에 예속

전술하였듯이 공손씨가 고구려와 선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예부여와 혼인동맹을 맺었다. 예부여는 조위가 공손씨를 멸한 후 245년 고구려를 공격할 때 조위에 군량을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조위에 협조한다. 단석괴 사후 모용씨가 낙랑군 북쪽을 차지하였는데, 모용외가 285년 예부여를 공격하여 의려왕은 자살하고 왕족들은 옥저로 도망가는 등 거의 망했으나 진의 도움으로 나라를 재건하였다.

백제의 공격, 모용황의 지배

『자치통감』은 346년 1월 하충의 사망을 기술하면서 하충과 관련된 사실을 기술한다. 『자치통감』은 하충이 모용황이 337년 10월 연왕을 자칭하는 것을 허용하는데 관련되었다는 것과, 모용황이 예부여를 복속시킨 과정을 기술하면서, 예부여가 취약해진 원인이 백제의 공격으로 연(모용황) 쪽으로 밀려난 것이라 한다. 『진서』 「모용황재기」에 의하면 모용황 3년 즉 336년 묘용황이 예부여를 정복하였다. 따라서 백제는 모용황이 예부여를 공격하는 336년 이전 어느 시점에 예부여에게 본거지를 이동시킬 정도의 타격을 주었다. 모용외는 서진이 복국시킨 예부여를 점령하려 하지 않았지만, 모용황은 진은 남쪽으로 갔고, 다른 세력이 예부여를 정복할 수도 있다 생각하여 바로 점령하였다. 강단유사사학은 336년 이전 어느 시점의 백제의 예부여 공격을 346년 있었다고 날조하며 백제가 아니라 백제로 표현된 세력이라고 하여 그들의 문학에 부합하지 않는 사서의 내용은 가차없이 부인한다. 강단유사사학은 “初” 이하의 내용을 본문의 346년 기사와 같은 시기의 사건으로 보는 무식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백제’라는 명백한 표현을 아무 근거도 없이 ‘백제로 표현된 세력’이라고 소설을 쓴다. 그들은 백제가 아니라 고구려나 물길의 오기라 한다. 그들은 일제가 교시하는 소설을 역사로 사기치기 위해 일제의 교시와 부합하게 사서를 왜곡날조한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는 예부여의 일부 세력이 열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당시 예부여의 상황이 모용씨와 백제에 의해 양쪽에서 공격 받는 상황이고 예부여인들은 어업과 항해에 능한 왜인들이 다수이므로 신빙성 있는 기사로 생각된다. 현재 의라신사가 오사카 강어귀에 있는데, 강어귀는 왜인들이 선호하는 정착지이다. 예부여 즉 비류백제가 일본 천황가가 된다는 견해가 있으나, 열도는 초기 가야 지배, 3세기 말 이후 백제 담로 지배, 5세기 고구려 백제의 분할 지배, 6세기 이후 백제 지배 시기를 거치므로 예부여가 열도의 지배세력이 되었던 시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부여가 열도에서 안라국이 되었다면 5세기 고구려 백제 분할 지배기에 고구려의 대리인으로서 열도 북부를 지배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백제와 전연의 전쟁

『진서』 「모용황재기」 345년 기사에, 봉유가 모용황에게 고구려 백제 우문부 단부의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주정책의 필요성을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전연과 백제가 전쟁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백제가 예부여를 이겼지만 당시 모용황의 세력이 강하여 낙랑군은 차지하지 못하였으리라 추정된다. 강단유사사학은 이 기사의 백제에 대해서도 황당한 근거를 들이대면서 여기의 백제는 백제가 아니거나 백제의 해안식민지에 불과하다는 소설을 쓴다. 그들의 창작소설에 부합하지 않으면 『자치통감』과 『진서』까지 날조사서로 만드는 그들의 용감무쌍함은 끝이 없다.

고구려와 백제의 다툼 중 고구려에 투항

전연은, 인질로서 전연의 수도인 업에 머물던 예부여 왕자 여울이 성문을 열어주어 전진에게 망한다. 즉 예부여는 모용황에게 정복된 뒤에도 속국으로 나라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예부여는 494년 고구려에 투항한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가 다투는 중간에 있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강단유사사학은 이때 투항한 부여도 동부여라고 하나, 동부여는 광개토대왕릉비문에 의하면, CE 22년 투항하였다가 중간에 조공하지 않았다 하여 410년 다시 토벌되므로, 494년에 다시 투항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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