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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1.고구려 한성)

1. 『수서(隋書)』는 고구려에 평양성 國內城 漢城의 세 도회지가 있다고 한다.

『隋書』 「東夷列傳, 高句麗」 都於平壤城 亦曰長安城 東西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復有國內城 漢城 並其都會之所 其國中呼爲 三京. [國都는 平壤城으로 長安城이라고도 하는데, 동서가 6리이며 산을 따라 굴곡이 지고 남쪽은 浿水에 닿아 있다. 또 國內城과 漢城이 있는데, 모두 都會地로서 그 나라에서는 「三京」이라 일컫는다]

2. 현재의 평양에서 漢城이라 기록된 고구려의 각자성석(刻字城石)이 출토되었다.

기경량의 각자성석 판독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판독: 丙戌二月中 漢城下後卩 小兄文達節 自此西北行[徏]之

∙해석: 병술년 2월 중에 한성에 있는 후부의 小兄 文達이 통제하여 여기서부터 서북쪽으로 진행하여 [오른]다.

수서와 각자성석에 의하면 현재의 평양은 고구려의 한성이었다.

강단유사사학은 서울 강북이 고구려의 한성이라 하는데, 강북은 주로 백제의 영토였고, 고구려가 점령한 시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국경이 도회지가 되기는 어려우며, 각자성석이라는 명백한 증거에 반하므로, 그들의 주장은 근거없는 소설에 불과하다.

3. 가능한 반론

현 평양은 한성이 아닌데 평양성 쌓으면서 각지에서 사람들을 동원하였을 수도 있으므로 한성이라는 각자성석이 나왔다고 현 평양을 한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반론은 근거가 희박하다. 성을 쌓는 지역에서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 당연하고, 멀리서 동원하면 사람들을 재울 자리도 마련해야 하고, 왔다갔다 시간도 소요된다. 그리고 각자성석에 小兄 文達이라는 책임자가 등장하는데 사람들을 동원했더라도 책임자는 그 지역의 사람이 될 것이므로 반론이 성립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4.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3에서 언급한 희박한 반론의 가능성마저 제로로 만들어버린다.

고구려의 평양은 고려시대 때 서경이라 하였다. 김부식은 묘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가면서 안북대도호부에 이르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데 강단유사사학은 안북대도호부가 영주(寧州)이고 영주는 지금의 안주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들의 말에 따라 고려의 서경을 지금의 평양이라 하면 모든 토벌군이 서경으로부터 북쪽으로 직선거리 70km까지 간 것이 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의 모든 병력의 지휘권이 안북대도호부에 모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경이 평양이라면 반란군은 바로 개경으로 남하하여 임금을 모시면 순식간에 반란군과 토벌군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김부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을 만들 리가 없다. 김부식은 평양성 토벌에 1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신중하였는데 토벌 대상 북쪽으로 직선거리 70km까지 갈 리가 없다. 반란군은 평양성만 점거하고 있는데 왜 70km 북쪽으로 가야 하는가? 만약 평양 북쪽의 성도 반란군의 수중에 있었다면 평양성의 반란군이 개경을 점령하는 것은 더욱 더 쉬워진다.

따라서 고구려의 평양은 최소한 안주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평양은 각자성석이 밝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漢城이라고 보아야 한다.

(ㄱ) 『고려사』 「김부식 열전」

〈김부식이〉 드디어 병사를 이끌고 평주(平州)를 경유하여 관산역(管山驛)에 당도하였으며 좌군(左軍)과 우군(右軍)이 모두 모이자 나란히 차례대로 행군하였다. 김부식(金富軾)은 사암역(射岩驛)과 신성부곡(新城部曲)을 거쳐 지름길로 성주(成州)에 도착하였고, 하루 동안 병사를 쉬게 하면서 여러 성에 급히 격문을 보내어 명을 받들어 적을 토벌한다는 뜻을 알렸다. 군리(軍吏) 노인해(盧仁諧)를 보내어 서경(西京)을 타이르게 하고 또 성 안의 허실을 엿보게 하였다. 모든 군사를 이끌고 연주(漣州)로 길을 잡아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에 이르니 진숙(陳淑)과 이주연(李周衍) 등이 동계(東界)로부터 와서 모였다. 이보다 앞서 녹사(錄事) 김자호(金子浩) 등을 보내어 칙서(勅書)를 가지고 샛길로 다니면서 양계(兩界)의 성(城)과 진(鎭)을 돌면서 서경 사람들이 모반한 상황을 알렸는데, 인심(人心)은 오히려 형세를 관망하려는 생각을 품었다. 대군이 이르니 여러 성들이 떨고 두려워하며 나와서 관군을 맞이하였다.

(ㄴ) 『고려사절요』 인종 13년 1월 21일(음)

을축. 중군(中軍)이 군사를 인솔하고 평주를 거쳐 관산역(管山驛)으로 향하고 좌우군(左右軍)이 모두 서로 차례로 갔다. 중군이 사암역(射嵓驛) 신성부곡(新城部曲)을 경유하여 지름길로 성주(成州)에 이르러 하루 동안 군사를 쉬게 하고 여러 성에 격문을 보내[馳檄] 적을 토벌하겠다는 뜻을 담은 말로써 깨우쳤다. (중략) 김부식이 군리(軍吏) 노인해(盧仁諧)로 하여금 서경을 초유(招諭)하도록 하고 또 성 안의 허실(虛實)을 엿보게 하여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연주(漣州)로 길을 잡아 안북부(安北府)에 이르니 진숙(陳淑)과 이주연(李周衍) 등이 동계(東界)로부터 와서 합세하였다. 〈이보다〉 앞서 녹사(錄事) 김자호(金子浩) 등을 보내 칙서를 품고 사잇길로 가서 양계(兩界)의 성과 진을 경유하며 서경의 반란군[西賊]이 반역을 일으킨 상황을 알렸는데[告諭] 인심은 오히려 관망하고 있다가 대군이 비로소 이르게 됨에 미쳐서는 여러 성이 두려워하고 떨며 관군을 맞이하였다.

(ㄷ) 『고려사』 「김부식 열전」

조광(趙匡) 등은 윤첨(尹瞻) 등이 하옥되었다는 일을 듣고서 반드시 〈처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여겨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중략) 김부식(金富軾)이 서경(西京)은 북으로는 산과 언덕을 등지고 삼면은 물로 막혔으며, 성이 또 높고 험하여 서둘러 함락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성을 둘러싸고 진영을 펼쳐서 그들을 압박해야 한다고 여겼다.

5. 상식적 생각

서경이라는 것은 국토의 서쪽 중심지라는 것이므로 강단유사사학처럼 고려가 압록강 이남에 있었다면 고려는 북쪽을 방비해야 하므로 현 평양은 북경은 될 수 있어도 서경은 될 수 없다.

신라와 당간의 전쟁은 지금의 요하와 태자하를 연결하는 선 부근에서의 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신라가 이겨 신라는 평양(지금의 요양) 이남의 고구려와 요동반도백제를 그 강역으로 만들었다. 신라를 계승한 고려의 강역에 요양도 당연히 포함되었고 고려는 북진정책을 위해 요양을 중시하여 서경으로 삼았다. 서경인 이유는 서쪽의 외적에 대비해야 하므로 고려의 서경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평양은 각자성석이 밝히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漢城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려의 서경이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고려는 지금의 압록강을 넘지 못했다는 일제의 교시를 떠받들기 위한 충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갸륵한 조작일 뿐이다.

6. 현 평양= 고구려 한성

현 평양이 고구려 평양이 아니면 강단유사사학의 모든 소설은 끝장난다. 강단유사사학의 낙랑군이 현 평양이라는 소설도 끝난다. 고구려 영토 사기치기, 최리의 낙랑국 부정 등 모든 강단의 소설은 현 평양이 고구려 한성이었다는 사실에 의해 똥이 된다. 그들은 똥인 줄 알면서도 된장국이라 주장하면서 일제가 푼돈만 주면, 똥탕을 맛있게 처먹는다.

[한 상고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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