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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역설逆說’

자전거를 탄다는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전거自轉車는 혼자 굴러간다 해서 자전거인데 사람이 [페달을 밟고] 타고 간다는 것은 맞지 않고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데 절로 가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농담도 느껴지는 이 주장은 자전거를 문자 그대론 스스로 간다고 하든지 아니면 올라 탄 사람이 발을 굴려 자전거가 자기 힘이 아닌 타력他力으로, 다시 말해 수동적으로 간다고 하는 말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고 있다. 여기에는 자동 아니면 타동, 능동 아니면 수동이란 양자택일의 구별이 깔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항대립이 해체되면 저 자전거의 역설도 사라진다.

우리말은 자전거를 자동의 주어로 놓고 자전거가 가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동의 목적어로 삼아 자전거를 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대부분, 특히 글이 아닌 말에서는 목적격 조사인 ()’이 빠지기 일쑤이다. ‘자전거 타다이렇게 말이다. 오히려 굳이 ()’을 넣어서 말하는 게 어색하고 심지어 꺼려지기도 한다. 자전거 타는 것만이 아니다. 밥 먹다, 산 타다, 모 심다, 열매 따다 등. 주격이나 목적격 조사가 뚜렷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말의 비합리성, 모호성일까? 그 보다는 우리말이 주체와 객체, 사람과 사물, 능동과 수동의 분별에 집착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자전거 타다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주체이고 객체인지 확실하게경계 짓지 않았다. 그래서 자전거의 역설이니 이항대립은 우리에게는 문제 밖이다.

보이다’, ‘들리다사물이 주어가 될 때 쓰는 피동사들이다. 영어의 수동태와 비교된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곱게 진 단풍, 파랗게 싹이 오른 보리를 보고, 또 여름 한낮 바람에 우는 강변의 나뭇잎 소리를 들을 때 단풍이나 보리, 바람 소리를 단지 주체인 우리가 보고 듣는 시각, 청각의 대상으로만 여겼을까? ‘보이다’, ‘들리다는 세상을 보는 한국인의 고유한 혼을 넌지시 지시한다. 보이고 들림은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그 자신들의 편에서 스스로 모습을 내보이고 말 건네는 한편 우리는 그를 향해 귀 기울이고 유심히 바라봄으로써 성립된다. 상호연관, 상호침투 속에 일어나기에 여기서는 주객이나 선후, 능동과 수동으로 딱 잘라 구분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말이 서양 말이나 문법에 맞자고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말은 구별과 차별보다 평등과 융화를 중시한 마음이 빚은 것이다. 또 우리의 언어는 다시 그 혼을 일구었다. 모든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것들은 나중의 일이다. 참된 것은 시원적인 데 있다.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에는 혼과 같다[國猶形 史猶魂].” 행촌 이암 선생의 말에 외람되이 덧붙이면 혼은 언어로 나타난다. 고유한 언어를 지키는 것이 혼을 지켜 역사를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일이다. 대한 사랑은 한글 사랑이다.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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