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
한민족 정체성의 근간 "환단고기"열공 (1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에 무대응하고 고작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관련 소식전하는 단체로 전락해 버린 한국사학 연구단체들. 무대응보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입장인 것으로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 동북공정의 뼈대논리! 누구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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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문명선전공전으로 해외에 유포되고 있는 동북공정 결과물 역사지도들. 동북아시아 고대사 지도에서 단군조선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자조선의 역사논리로 고조선은 주나라의 지방정권으로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어서 위만조선, 한사군 역사논리로 고대 한국사의 한반도 북부지역은 중국의 역사 영역으로 표기되어 전 세계에 유포되고 있다.
북한지역은 한나라 식민지를 이어 위(魏), 진(晉)나라 식민지였다는 지도가 전 세계에 홍보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유튜브나 기고를 통해 밝힌 것과 같이 이러한 역사 틀은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대상 최초 역사교육교재인 “심상소학국사교수지침서”에 명기된 내용이다.
그리고 명도전을 연나라 화폐로 소개하거나 청동기류 주장, 연나라 장성 주장 등을 일삼는 한국사 학자들 덕분에 연나라의 영토도 한반도 북부까지 확대되어 표기되었다. 문헌상, 고고학적으로 고증된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들이 고수한 역사 틀을 지키기 위한 자립책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중국 담기양의 지도뿐만 아니라 한국의 동북공정 대응학술단체로 국가에서 만든 역사재단인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 47억 지도는 위나라의 영토가 대한민국 경기도까지라고 표기했다. 이 재단이 제출한 2012년 미외교 위원회 CRS보고서 지도는 북한지역만이 고조선지역이며 한사군은 평양중심에 있었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한 역사지도, 독도를 한국사의 영역에서 배제한 내용으로 국회를 한 번 뒤집어 놓았다.
그 단체가 제시한 지도는 필자가 공개한 것처럼 1920년 조선총독부 “심상소학국사’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만리장성이 한반도 북한지역으로 갑자기 늘어난 것도 ‘패수’의 위치를 한반도 황해도로 끌어 들여온 한국사학자 주장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 학계에서 새롭게 만든 논리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어 조선인들에게 교육시킨 내용이며 현 사학계에서 가르치는 있는 한국고대사의 뼈대 논리인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 現 ‘한국사학계 사관’ 동북공정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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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국사 사관은 절대 중국의 동북공정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일본의 역사침탈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근 100년을 조선인들에게 교육시킨 내용인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역사문제는 당연히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잘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핵잠수함보다 깊이 잠수하여 무대응, 형식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고 국민들은 한편으로 분노하고 한편으로는 그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결론은 간단하였다. 국민들은 그동안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아전인수 격 역사해석이 아닌가하며 거리를 두고 지켜봤었다. 그런데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한중일 1차 사료를 직접 살피고 그동안의 각종 학술논문을 다시 검토하고 현지 답사까지 진행하다보니 역사의 본 모습에 눈 뜨게 되었다.
그리고 대일항쟁기 조선총독부의 사료를 하나하나 검증하면서 현 사학계의 속수무책의 원인을 완전히 파악하게 되었다. 광복 후 한국사는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 본래의 한국사 틀이 마련되었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데, 정작 조선총독부 사료와 비교하였을 때는 그 주장이 허구로 완전히 드러났다. 말 그대로 새빨간 거짓말 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주장이 의심되면 독자들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1920년 “심상소학국사(아동용)”와 “심상소학국사 교수지침서”의 원문을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권유한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한국사 뼈대가 100%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동북공정의 핵심 그리고 현 일본의 임나일본부 주장의 배경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발표의 조선 총독부 ‘고려국경 조작’이나 ‘장수왕의 평양 천도위치 조작’ 등의 지침이 100년 전 이 책안에 기록이 되어 있다.
이것이 현실이기에 한국 사학계는 스스로 자정하지 못하면 영원히 ‘조선총독부 아바타사학’으로 미래 한중일 역사전쟁에서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한 식물학계로 전락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미래를 생각하는 국민들은 속이 타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한국사의 원형을 갈구하는 ‘시민역사학 시대’를 열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활발히 정보를 공유하고 역사왜곡에 대해 공동대응을 하고 있다.
역사를 연구할 때는 기본 뼈대를 가지고 그 진위를 연구해 가야 한다. 무턱대고 누구의 학술을 숭배할 수 없다. 그 이유인 즉은 역사는 단순히 고고학, 문헌학적 증거만으로 그 역사를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살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을 조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송장역사이다. 한국사 공부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것이다. 한국사의 기초 사료인 삼국유사, 삼국사를 바탕으로 한국사의 원형을 잡기는 어렵다. 이것을 잘 아는 조선총독부이기에 이 두 가지 책은 조선총독부 관보에 압수목록 사서로 명시하지 않았다.
● 대일항쟁 임시정부! ‘독립 운동가들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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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임시정부와 요인들, 독립운동가 단체들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 틀을 바로 하는 것이 현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이 될 것은 자명한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 신흥무관학교 등등 독립투쟁가 그 분들의 역사관과 부합하는 책이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고 시민들이 역사학의 중심교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책이 바로 1911년 독립운동가 계연수 선생에 의해 편찬되어 나온 “환단고기”라는 사서이다. 이 사서는 계연수선생의 유언으로 여러 사정을 거치면서 이유립에 의해 이 세상에 마침내 드러난다.
● ‘1980년대 환단고기 등장’ 주류사학계 맹공
이 사서가 1980년대 한번 바람을 일으켰을 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주목을 많이 받은 만큼 이에 대한 주류사학계의 공격도 어마어마했다. 그들이 광복 후 형성한 모든 카르텔을 활용하여 우선 주요 언론을 통해 ‘환단고기 위서론’ 맹공을 퍼 부었다. 역시 요즘 말하는 역사학계 조선총독부의 토착왜구들의 카르텔 연대는 효과를 보았다.
자기들의 논리에 반대되는 자들을 총공격해서 관련자를 매장해 버리는 방식이었다. 그 한 예가 천문학자가 환단고기 단군세기편 천문연구를 통해 그 진실을 밝힌 사건이었다. 하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천문 데이터만 입력하면 결과가 도출되는 것으로 세계 어느 학자들로 이 방식에 의문을 제기 할 수가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달랐다. 또다시 온 카르텔이 결집하여 연구자인 두 천문학자 죽이기에 집중하여 일부의 승리를 쟁취했다. 한 분은 건강문제로 돌아가시고 한 분은 그 연구 논문발표의 후유증으로 십 수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어떤 저명한 위서론 주장자들은 환단고기에 사용된 용어를 지목하면서 그 용어는 근대용어이기에 위서라고 하였다. 그 후 어느 고전학자가 “제발 역사하는 자들은 인문고전이라도 공부하고 역사를 하라”고 당부하면서 그러한 용어는 고대 사서에 사용된 용어라고 반론을 제시하였다.
한국사학계 저명한 학자인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그 이후로 잠수모드로 전환하여 지금까지도 자기주장의 그릇됨을 인정하지 않고 아류 3류 급들을 내세워 환단고기 위서론 주장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 남북 학자들 ‘환단고기’ 眞書로 인정!
급기야 온라인에 백과사전을 선점하여 “환단고기, 규원사화”는 북한학계에서도 위서로 주장하는 책이라고 100%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규원사화는 한국사학계의 중심인물 중 한 분인 손보기선생을 비롯하여 세 분이 철저히 검증하여 ‘진서’로 인정한 역사서이다.
그런데 현재 몇 사람이 뭉쳐 서로 돌아가며 자기들 끼리 논문을 인용하며 마치 많은 학자들이 위서론 동조자인 것처럼 여러 편의 논문을 쓰는 코미디극도 진행하며 규원사화 위서론을 주장하는 자도 있다.
전 한신대 교수이며 한철학 대가인 김상일 박사가 증언한 것처럼 남북한지역 학술교류 때 “환단고기”는 참여한 남북한학자들이 ‘정사’로 인정하였으며 그러한 논문 또한 요즘 공유되고 있다. 그런데도 위서론자들은 온라인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국민을 기만하고 사기협잡의 옹졸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누구 언어인가? 사학계 ‘유사 용어’
최근에는 조선총독부가 민족 정신문화를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유사(사이비)”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민족사학계나 환단고기 공부하는 국민들을 “유사사학”이라고 프레임을 씌운 책을 만들어 카르텔그룹들의 바이블이 되었으며 언론방송에서 까지 나와서 ‘나는 조선총독부 후예입니다’를 증명하듯 환단고기를 “유사사학”의 대명사로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그들이 토착왜구의 후손이며 대일항쟁기 조선인의 씨가 아닌 왜의 씨로 바뀐 후손이라면 그들이 주장하는 환단고기는 당연히 “유사사학”이며 사이비가 된다. 조선총독부가 한국 원형문화단체, 대일 저항민족단체를 “유사”라는 프레임을 씌워 제거하려고 했던 것처럼.
위서론자 주장자들은 이유립선생이 잃어버린 1911년 초간본이 원래 없었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정작 이유립선생으로부터 환단고기를 직접 교육받은 양종현씨는 자신이 1911년 목각본 환단고기로 공부했다고 증언을 했으며 최근 1902년 해학 이기선생이 감수한 환단고기 등사본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는데 위서론자들은 공동대응 하면서 계연수, 이유립 죽이기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의 한계가 극한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환단고기란 어떤 역사서이기에 민족사학계와 현존 토착왜구 조선총독부 카르텔과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가?
● 환단고기! 반드시 직접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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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몇 가지 인식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 온라인에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이 주장한 글을 전적으로 믿지 말고 직접 환단고기 사서를 읽어보시라고 권유를 먼저 드린다.
필자는 온라인의 환단고기 위서론자들 글을 읽어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 마디로 환단고기 읽어본 자들이 아니었다. 자기 종교적 편견으로 공격하는 자들이 많았고, 어떤 자는 자기 논리가 거짓임이 밝혀졌는데도 끝까지 그 자료를 지우지 않고 책으로까지 발간하여 그들 세계의 우상이 되기도 하였다. 자기주장의 반론이 담긴 자료영상을 보고 “자기는 조회수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안 본다”는 이상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어떤 이는 삼성기의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환국 기록을 보고 이것은 ‘지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기에 위서다’라고 주장하는 글을 온라인에 도배를 해 놓았는데 정신 나간 국민들은 그 글에 적극동조를 한다.
한 마디로 ‘무지가 무지를 낳은 무식도통’인 것이다. 고대의 측정단위에서 ‘만 리’의 개념을 연구해 보지 않고 직선자를 펼쳐 측정한 코미디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중국 만리장성이 ‘직선거리 만리인가?’를 생각해 보면 되는 것이다.
● ‘환국’ 아닌 ‘환인’ 주장하는 근거는?
과거 소개드린 것처럼, 어떤 몇 사람은 환단고기의 “환국”이 아니라 “환인”이라고 주장하면서 환단고기 위서론을 주장하며 한 평생을 보내는 별난 학자도 있다. 참 색다른 삶을 산다. 임시정부에서 한국독립당에서 한국사의 시발점을 “환국”이라고 명시한 자료가 발굴되었는데 이젠 뭐라고 둘러 댈 것인지?
어떤 초록동색인 소설가는 이것이 꺼림직 했는지 임시정부요인들이 한자를 잘 몰라서 환인을 “환국”으로 표기했다고 주장했다. 뭐라 해야 하나? 피노키오가 떠오른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데 환단고기 위서론 주장자들은 임시정부의 한자실력까지 못 믿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100년 전 일본 밀정 감영극에서 사지가 잘려 압록강에 버려진 환단고기 편저자인 독립운동가 계연수선생을 모독을 하며 1979년 환단고기를 창작한 이유립이 자기 아버지를 계연수에게 오버랩 시켰다고 최근 글을 썼다.
다음으로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은 어떤 소설가의 주장처럼 환단고기는 이유립선생이 혼자서 창작한 것이 아닌 천 년의 세월 속에 소장되어 온 사서로 1911년 계연수 독립운동가가 합본하여 오동진, 홍범도 장군의 지원으로 편찬한 사서라는 것이다.
신라 10승 중 한 분인 고승 김안함의 ‘삼성기’(상), 고려시대 학자 원동중의 ‘삼성기’(하), 고려 말 재상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고려 말 학자이며 충신인 범장(세동)의 ‘북부여기’, 조선 중종 학자인 이맥이 8권의 사서를 쓴 ‘태백일사’ 가 그것이다. 천 년간 이어진 총 5권의 책이며 내용으로는 12권의 역사서이다. 서문에는 소장자의 집안내력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글로벌 공동가치 문화’ 弘益人間
환단고기의 내용은 위서론자들 주장처럼 ‘우리나라가 최고다’, ‘우리나라 영토가 제일 넓었다’가 아니다. 환단고기 손에도 안 잡아 본 자들의 주장이다. 삼성기에는 인류가 1만 년 전 12개의 연방국가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그 나라가 “환국”이었으며 통치자는 “인”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1만 년 전 환국의 성립은 최근 기후학자들의 연구논문으로 그 실존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桓(환)자를 붙인 이유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현대와 같은 물질중심의 사회가 아닌 고도의 영성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체제로서 자신들의 진아(眞我)를 인식했던 홍익인간의 사회라는 것이다. 즉 인류가 1만 년 전 공동 사회를 형성하여 공동가치 문화를 교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서구 정신문화연구가들은 고도의 고대 영적문화로 “화이트샤먼(white shaman)”의 문화라 정의하고 있다. 단순한 무당의 경계가 아닌 대자연과 소통한 고도의 영적 문화시대라는 것인데 학교 교육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로 인식하는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다. 도구의 사용만을 가지도 시대를 구분한 방법으로선 그 시대 정신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시대의 경전은 ‘천부경’으로 인류 경전과 사상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1에서 10까지 수리로서 천지만물, 역사, 인간 등 모든 문제를 인식케 하는 경전이다. 그동안 천부경 위서론자들이 나서서 위서론 주장을 거침없이 하다가 최근 북한에서 백두산 천부경을 발굴함에 따라 자연히 잠수모드로 전향했다.
● 開天節! 단군조선의 역사시대
그리고 기후의 변화로 환국은 자연스럽게 해체과정을 맞으면서 전 세계로 문화의 이동이 시작되며 그 중 환국의 정통문화는 서자부의 환웅이 천부인을 인수받아 동방개척의 길로 이동하며 배달 신시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지나인의 기원이 되는 반고(盤固)가한도 같이 삼위산으로 이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달 신시를 개천한 배달 환웅은 18대를 계승하며 다스렸으며 동방개척 당시 웅족과 호족이 고도의 문화그룹인 환웅족의 천손족으로 들어오고자 기원하였는데 배달의 거발환 환웅은 그들에게 인간의 진아를 볼 수 있는 광명족이 되는 법방을 전수하여 3.7일을 주기로 100일간 집중공부를 시키는데 이것이 삼국유사의 곰과 호랑이, 마늘, 쑥, 3.7일, 100일 공부의 실체다.
그 공부의 핵심이 담긴 경전이 환웅이 백성들에게 가르친 ‘삼일신고’이며 특히 5장 ‘인물장’에는 그 수행법의 요체가 들어있다. 현존 요가, 단학, 성리공부, 불성공부의 기원이 이것이다. 그리고 현 중국 동북공정 중 한 부분인 중화삼조당의 주인공인 그 유명한 배달국 치우천황과 지나족 황제헌원 간의 10년 전쟁, 탁록대전의 실체가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기념하는 개천절은 실제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것이 아닌 배달환웅이 배달신시를 개척하여 웅족을 교화하여 홍익인간의 시대를 열었던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부터 ‘배달민족’이 출발하는 것이다. 배달신시를 계승하여 여러 가지 변화 속에서 구이족을 통일하고 “조선”를 건국한 시대가 다음으로 열리는 단군조선의 역사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