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
다뉴세문경 -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거울
머리카락 보다 얇은 0.02mm의 간격...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우리 조상들이 만든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누군가 당신에게 "지름 21.2cm의 작은 동그라니 안에 13,000개 이상의 선을 새겨 넣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놀랍게도 청동기시대에 위와 같은 문향을 새겨넣어 엄청난 일을 해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최첨단 산업인 청동기 생산단지가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지역에 있었다는 증거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반교리는 본래 전주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반교리 갈동리 수청리 갈산리 일부와 이남면의 옥정리 일부를 병합, 반교리라 고 해서 편입됐다. 갈동은 시양골이라고도 하는 바, 시향을 지내는 골짜기라는 말이다.
시향은 시제와 같은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는 사시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독립된 뜻으로는 시향이 향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니, 향사를 지내러 갈 때 시향을 지내러 간다고도 한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2007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 다뉴세문경(청동거울) 2점을 비롯, 한국식 동검인 세형동검, 동모(창의 일종), 동부(도끼), 동사(새기개의 일종) 등 다량의 청동기를 발굴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2003년에도 청동기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거푸집이 발견돼 화제를 모은바 있다.
무엇보다도 청동기 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다뉴세문경의 발굴은 이 지역에 기원전 3세기 때 최첨단 산업단지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즉, 이곳에서 출토된 각종 청동기, 토기 등은 한반도 이남에서 발전한 초기 철기 시대 문화를 규명해 고고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과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을 보물로 지정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용범) 2점으로,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과 동과(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해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다.
거푸집의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매우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자료의 진실성과 중요성이 다른 거푸집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5호 묘에서 나온 다뉴세문경은 지름 14.6㎝ 크기로 형상을 비추는 앞면은 오목 렌즈 모양이고 뒷면에는 고리의 일종인 뉴 2개가 붙어있다.
다뉴세문경 등의 청동 유물은 제작시기가 기원전 2, 3세기로 추정된다. 이 다뉴세문경이 전남 함평, 경북 경주, 강원 횡성 등의 출토품과 비교될 수 있으며 특히 일본 후쿠오카현 오구리시 와카야마 유적 출토품과는 하나의 틀에서 찍었다고 할 만큼 흡사하다.
정문경은 ‘다뉴세문경’ 또는 ‘잔무늬 청동거울’의 고고학적 용어. 매우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으며, 반대로 ‘거친 무늬 청동거울’은 ‘조문경’으로 일컬컫고 있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으로, 그 중 ‘전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고,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 쌍주령 등과 함께 국보 제143로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되어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전 논산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서면 혁신도시는 제사의식에 쓰는 제사용품으로 만들어진 정문경, 그리고 첨단의 청동생산지로 제2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lee90241@naver.com 시민기자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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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http://www.incheonin.com)
우리 조상들이 만든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누군가 당신에게 "지름 21.2cm의 작은 동그라니 안에 13,000개 이상의 선을 새겨 넣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놀랍게도 청동기시대에 위와 같은 문향을 새겨넣어 엄청난 일을 해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최첨단 산업인 청동기 생산단지가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지역에 있었다는 증거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반교리는 본래 전주 이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반교리 갈동리 수청리 갈산리 일부와 이남면의 옥정리 일부를 병합, 반교리라 고 해서 편입됐다. 갈동은 시양골이라고도 하는 바, 시향을 지내는 골짜기라는 말이다.
시향은 시제와 같은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는 사시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독립된 뜻으로는 시향이 향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니, 향사를 지내러 갈 때 시향을 지내러 간다고도 한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2007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 다뉴세문경(청동거울) 2점을 비롯, 한국식 동검인 세형동검, 동모(창의 일종), 동부(도끼), 동사(새기개의 일종) 등 다량의 청동기를 발굴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2003년에도 청동기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거푸집이 발견돼 화제를 모은바 있다.
무엇보다도 청동기 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다뉴세문경의 발굴은 이 지역에 기원전 3세기 때 최첨단 산업단지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즉, 이곳에서 출토된 각종 청동기, 토기 등은 한반도 이남에서 발전한 초기 철기 시대 문화를 규명해 고고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과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을 보물로 지정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용범) 2점으로,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과 동과(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다.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같이 나온 유물들로 보아 출토 정황이 명확해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다.
거푸집의 상태,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매우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했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출토 지점과 출토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자료의 진실성과 중요성이 다른 거푸집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5호 묘에서 나온 다뉴세문경은 지름 14.6㎝ 크기로 형상을 비추는 앞면은 오목 렌즈 모양이고 뒷면에는 고리의 일종인 뉴 2개가 붙어있다.
다뉴세문경 등의 청동 유물은 제작시기가 기원전 2, 3세기로 추정된다. 이 다뉴세문경이 전남 함평, 경북 경주, 강원 횡성 등의 출토품과 비교될 수 있으며 특히 일본 후쿠오카현 오구리시 와카야마 유적 출토품과는 하나의 틀에서 찍었다고 할 만큼 흡사하다.
정문경은 ‘다뉴세문경’ 또는 ‘잔무늬 청동거울’의 고고학적 용어. 매우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으며, 반대로 ‘거친 무늬 청동거울’은 ‘조문경’으로 일컬컫고 있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정문경은 약 60점으로, 그 중 ‘전 논산 정문경’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 있고, 화순 대곡리에서 나온 정문경은 함께 출토된 팔주령, 쌍주령 등과 함께 국보 제143로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로 지정되어 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전 논산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매우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철기 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서면 혁신도시는 제사의식에 쓰는 제사용품으로 만들어진 정문경, 그리고 첨단의 청동생산지로 제2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lee90241@naver.com 시민기자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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