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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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가 백제를 창업하고 통치한 역사라 번(辰番) 사이에 있는 바다 가까운 외진
고 했다. 땅에 이르렀다.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편>은 서두에
(나) 그곳에 산 지 10년 만에 밭을 사서
서 온조가 처음 백제를 건국할 때 하남 위
장원을 두고 재산을 모아 수만 금에 이
례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르니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따
온조왕 13년 기사를 보면 신하들에게 내 르는 자가 많았다. 남으로 대수(帶水)
린 조서에서 “장차 반드시 나라를 옮겨야 에 이르고 동으로 큰 바다에 닿는, 5백
겠다(必將遷國)”고 말하고 있고, 또 14년 기 리 되는 땅이 모두 그의 소유였다. 그리
사에는 “봄에 천도하였다”고 하였다. 이것 고 주몽제(朱蒙帝)에게 사람을 보내어 글
을 단재는 위례성에서 위례성으로 천도한 을 올려, 섬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임금
것이므로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온조왕 께서 매우 기뻐서 칭찬하시고 소서노를
책봉하여 어하라(於瑕羅)라는 칭호를 내
13년까지의 기록은 온조가 아니라 소서노
리셨다.
가 통치한 역사이며, 소서노야말로 여성으
로서 한 국가를 세운 최초의 인물이라고 (다) (어하라 재위) 13년 임인년에 이르러
하였다. 이러한 단재 선생의 주장은 신뢰 소서노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 비류가
할 수 있는 것일까? 즉위하였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이 없
었다.
3.『환단고기』가 밝혀주는 백제의 건국
(라) 이때 마려 등이 온조에게 이르기를,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서는 백제
“신이 듣기로 마한의 쇠망이 임박하였
가 서기전 31년에 소서노가 건국하였다는 다 하니 가서 도읍을 세울 때라 생각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옵니다” 하니, 온조가 “좋다”라고 하였
다. 이에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 먼저
(가) 고주몽 성제가 재위하실 때 일찍이 마한의 미추홀에 이르러 사방을 돌아
말씀하시기를, “만약 적자 유리가 오면 다녀 보았으나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
마땅히 태자로 봉할 것이다”라고 하셨 었다. 오랜 뒤에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
다. 소서노(召西弩)는 장차 자신의 두 아 르러 부아악(負兒岳)에 올라 살만한 땅을
들(비류와 온조)에게 이롭지 못할 것을 염 찾아보았다. 그때 마려, 오간 등 신하
려하다가, 경인년 3월에 사람들에게서 열 명이 간하였다. “오직 이곳 하남(河南)
패대(浿帶)의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 땅은 북으로 한수(漢水)를 끼고, 동으로
하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달려가 진 높은 산이 자리잡고, 남쪽으로 기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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