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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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소서노가 백제를 창업하고 통치한 역사라                       번(辰番) 사이에 있는 바다 가까운 외진
                고 했다.                                       땅에 이르렀다.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편>은 서두에
                                                            (나) 그곳에 산 지 10년 만에 밭을 사서
                서 온조가 처음 백제를 건국할 때 하남 위
                                                            장원을 두고 재산을 모아 수만 금에 이
                례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르니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따
                온조왕 13년 기사를 보면 신하들에게 내                      르는 자가 많았다. 남으로 대수(帶水)

                린 조서에서 “장차 반드시 나라를 옮겨야                      에 이르고 동으로 큰 바다에 닿는, 5백
                겠다(必將遷國)”고 말하고 있고, 또 14년 기                  리 되는 땅이 모두 그의 소유였다. 그리
                사에는 “봄에 천도하였다”고 하였다. 이것                     고 주몽제(朱蒙帝)에게 사람을 보내어 글

                을 단재는 위례성에서 위례성으로 천도한                       을 올려, 섬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임금
                것이므로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온조왕                       께서 매우 기뻐서 칭찬하시고 소서노를
                                                            책봉하여 어하라(於瑕羅)라는 칭호를 내
                13년까지의 기록은 온조가 아니라 소서노
                                                            리셨다.
                가 통치한 역사이며, 소서노야말로 여성으
                로서 한 국가를 세운 최초의 인물이라고                       (다) (어하라 재위) 13년 임인년에 이르러

                하였다. 이러한 단재 선생의 주장은 신뢰                      소서노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 비류가
                할 수 있는 것일까?                                 즉위하였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이 없

                                                            었다.
                3.『환단고기』가 밝혀주는 백제의 건국
                                                            (라) 이때 마려 등이 온조에게 이르기를,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서는 백제
                                                            “신이 듣기로 마한의 쇠망이 임박하였
                가 서기전 31년에 소서노가 건국하였다는                      다 하니 가서 도읍을 세울 때라 생각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옵니다” 하니, 온조가 “좋다”라고 하였
                                                            다. 이에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 먼저
                   (가) 고주몽 성제가 재위하실 때 일찍이                   마한의 미추홀에 이르러 사방을 돌아
                   말씀하시기를, “만약 적자 유리가 오면                    다녀 보았으나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
                   마땅히 태자로 봉할 것이다”라고 하셨                     었다. 오랜 뒤에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

                   다. 소서노(召西弩)는 장차 자신의 두 아                  르러 부아악(負兒岳)에 올라 살만한 땅을
                   들(비류와 온조)에게 이롭지 못할 것을 염                  찾아보았다. 그때 마려, 오간 등 신하
                   려하다가, 경인년 3월에 사람들에게서                     열 명이 간하였다. “오직 이곳 하남(河南)

                   패대(浿帶)의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                   땅은 북으로 한수(漢水)를 끼고, 동으로
                   하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달려가 진                    높은 산이 자리잡고, 남쪽으로 기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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