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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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개정 역사
박이사장님의 추모식을 계기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가 있다. 그것은 1978
년에 있었던 국사교과서 파동 사건이다. 1974년 국사교과서는 국정 단일본으로
바뀌게 되는데, 고대사인식에 대한 입장차가 보였다. 단군개국론을 신화로 규정
하고 중국 연나라 장수 위만을 고조선을 창건한 시조로 보는 등 일제 식민지 사
관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안
호상 <국사찾기협의회>회장은 1978년 9월 29일 국사교과서의 개정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1981년 11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는
데, 안호상(국사찾기협의회 회장), 박시인(서울대 영어영문학), 임승국(한국정사학회 회장), 김
원룡(서울대 고고미술사학), 김철준(서울대 국사학), 이기백(서강대 사학) 등이 참석하여 토
론을 진행하였다. 김원룡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으로서 직계 스승은 후치타 류사
쿠이다. 진나라, 한나라 낙랑 등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
인물로 중국침윤론 주창자다. 김철준은 ‘삼국시대 신라통일기 연구의 선구적 개
척을 한 학자’로서 이마니시 류를 꼽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로서 김철준과 함께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추종한
인물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근현대 명백히 갈라진 역사학계의 두 물줄기
를 파악할 수 있다. 안호상, 박시인, 임승국으로 대변되는 국사찾기맥과 김원룡,
김철준, 이기백으로 대변되는 일본사학 보존맥이다. 과연 어느 맥이 이 나라를
살리는 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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