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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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박사는 상기 기록으로 볼 때 광개토왕이 평주를 차지한 후 북경 또는
노룡(진황도)에 도읍하였음을 알 수 있고 실제 하북성 하간시(河間市)에 고구려 유
적이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 패수의 흐름을 통한 평양의 위치
이 밖에 자연지리를 활용하여 평양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패수
의 흐름이었다.
그동안 한국학계와 일본학계에서 장수왕의 평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 것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인 대동강이었다. 이 근거는 모든
문헌기록들을 무시할 수 있는 근거였다. 고구려 사신이 역도원에게 직접 패수가
동에서 시작하여 서로 흐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조선시대
후기 학자들이나 일본학자들은 역도원의 말처럼 동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
러 들어가는 강물 가운데 평양과 관련 있는 것은 오늘날 대동강이라 말했던 것
이다.
그런데 여러 중국사서에서는 줄곧 언급되는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인 요녕성
요양지역의 주요 강들은 모두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15세기 후반에 직접 답사를 한 최부의 『표해록
(漂海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蓋遼地瀕海而高亢。支河皆逆流。故泰子渾河皆自東而西。又有境外支河。
皆自北而南。曲折縈廻。俱會于此。作浮橋橫截河流。又挽舟而渡。號爲遼河
渡。(『표해록(漂海錄)』 성종 19년 5월 22일)
대개 요동 지세는 바다에 접근해서 높이 솟아올라 지류(支流)가 모두 역
류하는 까닭에 태자하와 혼하가 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으며, 또
지경 밖의 지류는 모두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굽이지고 빙둘러서 모
두 이곳에 모이니 부교를 만들어 하류를 가로 막아 끊었으며 또 배를
당겨 건너게 되므로 ‘요하도’ 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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