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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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명나라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이 기록에서는 고구려 장수왕이 요동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기
록으로 남겨 놓고 있다. 그 지역은 바로 요양지역을 말하는데, 그 근거는 명나
라 동녕위’는 원나라 ‘동녕로’ 자리인데, 그 자리는 곧 지금의 요녕성 요양이기
때문이다.
平壤城: 在鴨綠江東一名王儉城卽箕子之故國城外有箕子墓漢爲樂浪郡
治晉義熙後其王高璉始居此城後號西京元爲東寧路.
평양성은 압록강 동쪽에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검성’이라고 부르
는데, 원래 기자의 나라이다. 성 밖에는 기자무덤이 있다. 한나라 때는
낙랑군 지역이었고, 진나라 의희년간에 고련(高璉, 고구려 장수왕)이 성에
서 처음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서경으로 불렀고, 원나라가 동
녕로로 하였다.(『대명일통지』)
이 기록에서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요양지역이 한의 낙랑군 지역이라는 것과 기
자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초기에는 한반도 평양이 한나라 낙
랑군 지역이었다든지 기자묘가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
자무덤에 관한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사신들도 조선에 그
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원나라 사서와 청나라 사서에도 평양 관련 기록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2) 또 다른 기록들
『옴니버스 한국사』의 저자 이진우 박사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더 적극적인 주
장을 하고 있다.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가 하북성(북경 인근) 지역이라는 사료 근거
를 제시하고 있다.
1) 『양서(梁書)』
양나라가 광개토왕에게 평주목(平州牧)과 요동, 대방 2국왕 작위를 주어 하북을
중심으로 하는 국왕임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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