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월간 대한사랑 24년 2월호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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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둘러싼 이들 강대국 간의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었다. 다
시 말하면, 동학혁명은 작은 조선에서 시작되었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을 촉발시켰으며, 결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하게 만든 거대한 역사
의 전환점이 되었다.
동학의 본질은 시천주(侍天主)와 다시개벽
갑오동학혁명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성격과 정치운동이 결합되어 고부
민란에서 비롯되었으며 부패한 지방관리들을 척결하고 봉건체제 개혁을
요구한 민권운동이며, 또한 일본의 침략에 항거한 항일무장투쟁으로 평가
된다.
동학은 본래 『용담유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종교가 아닌 무극대도(無極
大道)로서, 시천주와 다시개벽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문명이
열린다는 가르침을 선포했다.
그러나 1864년 3월 10일 조선 조정은 동학이 삿된 도로 정도를 어지럽
혔다는 죄로 수운 최제우를 대구 경상감영 안의 관덕정 뜰앞에서 처형하
였다. 조선의 봉건적 계급사회에 반하는 근대적 이념인 평등한 세상을 추
구하는 인존주의에 입각한 동학은 집권 양반계급 입장에서는 이질적이며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념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조선 지배계급의 지
속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꾸준히 세를 확장하여 20년 뒤에는 2
대 교주 최시형이 본거지를 충북 보은군으로 옮겨 동학 재건운동을 펼쳤
다. 1892년 11월에는 삼례봉기를 통해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인정받고자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동학도 탄압
금지, 동학을 서학과 혼동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1893년 3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2~3만여 명의 동학도가 충북 보은에 모여들어 동학 합법화를
비롯한 정치적인 제도개혁을 위한 요구를 하는 한편 서세동점(西勢東漸)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척양·척왜를 외쳤다.
동학혁명의 횃불이 타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 접주 전봉준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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