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대한사랑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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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Q&A



 『세조실록』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이   이유립 선생이     이유립 선생이 1976년 의정부에 거주할 당시 백내장
 “안함로원동중삼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세조실록』  가지고 있었다던     수술을 하기 위해 친척이 운영하는 안과가 있던 군산

 성기” 기록을 어떻게  의 ‘안함로원동중’을 세 인물로 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환단고기』 초간본은 왜   에 5일간 머무른 적이 있었다.
 해석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가요?                  집세를 5개월 정도 밀린 상태에서 집을 비운 사이, 집 주인
 그것은  『세조실록』(1457년)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은 이유립 선생이 야반도주한 줄 알고 책을 모두 팔아버렸
 보다 시기가 앞서기 때문에 『세조실록』을 바탕으로 『신증동               다. 이때 초간본도 함께 분실하였다고 이유립씨의 제자였던
 국여지승람』을 해석할 수는 있어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바               양종현씨는 생생히 증언하였다.

 탕으로 『세조실록』을 해석할 수는 없다.
 『세조실록』을  바탕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해석해보면,   <자유>지           오형기씨가 필사한 『환단고기』(광오이해사본) 발문을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은 안함로, 원동중과 다른 사람이다.   내용(1976년)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은 건축기술자인 반면, 안함로, 원동  『환단고기』의 내용이  己丑春, 余入江都之摩利山.

 중은 책과 관련된 사람이다.     같으므로 『환단고기』는                適値大迎節, 謁大始殿李靜山裕岦氏,
                     이유립 선생의 창작물이                囑余以桓檀古記正書之役.
                     아닌가요?                       (기축년 봄에 나는 강화도의 마리산에 들어갔다. 때마침

                                                 대영절을  맞이하여  대시전에서  정산  이유립씨를  뵈었는
                                                 데, 나에게 『환단고기』를 정서하는 일을 부탁했다.)

                                                이유립 선생은 오형기씨 형과의 인연으로 동생인 오형기 씨
                                                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오형기 씨는 『환단고기』 필사

                                                를 그렇게 원했다 한다. 그래서 이유립씨는 그것을 못내 허락
                                                했는데, 『환단고기』를 필사하면서 발문을 적었다.
 『세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오형기는 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이유립씨보다는 10여
                                                 세 연하였으며, 10여 년 전 작고하였다”
 이유립 선생은  커발한 개천각이 건립된 후 단단학회 조영주 선생과            <신동아> 2007. 9월호 ‘『환단고기』의 진실 제2부-계연수
 개천각교의 교주  많은  회원들은  단군계통의  신흥종교에도  개천각을         와 이유립을 찾아서’
 였다고 하던데 『환단고  개방하여 재정에 도움이 되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위 기사는 오형기씨와 이유립 선생이 동시대 사람인 것을

 기』는 그 종교의 경전이   하지만, 당시 단단학회 회장이었던 이유립 선생은 동의하지   말해준다. 여기 발문 앞 기축년은 1889, 1949, 2009년 중
 아닌가요?  않았는데, 후에 회원들에 의해서 개천각이 개방되자, 이유립        1949년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유립 선생이 <자유>지에 실
 선생은 손님처럼 대영절과 개천절에만 참석해서 행사를 주
                                                은 『환단고기』 내용은 1979년 정식 출간된 『환단고기』 내용
 재하고 개천각 정수관에는 계시지 않았다고 단단학회 부회
                                                이 아닌 1949년 전부터 존재했던 『환단고기』(1911년)의 내
 장을 지냈던 조영주 선생이 증언한 바 있다.
                                                용을 인용해서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1949년 출간된 광오이
 이유립 선생을 한 종단의 책임자로 교주를 운운하는 것은 이
                                                해사본의 『환단고기』발문을 통해 『환단고기』는 1979년에 처
 유립 선생의 민족에 대한 순정을 왜곡하는 행위다.
                                                음 나온 책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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