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6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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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또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가치있게 여겼는데, 국가 차원에서 보더라도 생명과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기본단위가 가정이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구하는 자는 번뇌를 끊기 위해 가장 먼저 천륜
을 끊는다. 가정을 극복대상이자 저해요소로 보는 것이다. 도교는 어떠한가. 직접적으로 가족간의
관계를 끊진 않는다 하더라도 신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자는 가정을 도외시하고 수련에만 몰두해
야 도를 통한다고 본다. 유교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주창하기에 가정에 효도하는 것으로 가정
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순 있으나,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만 높이는 면, 본질보다는 형식에 지
나치게 얽매여 창조적인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는 행복한 가정문화를 열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상고시대를 들여다보면,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환웅의 교화를 받은 웅족의 여성 군
장인 웅녀가 수행의 과정을 통해 ‘변득인형(便得人形)’이 된 후 ‘주원유잉(呪願有孕)’하였다는 구절
이 있다. 기존에는 ‘일웅일호(一熊一虎)’를 한 마리의 곰과 호랑이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이제 웅족
과 호족의 족속으로 보는 견해가 더 타당성을 얻고 있다. 그렇기에 ‘변득인형’은 짐승이 사람의 형
상으로 변화된 것을 뜻하지 않고, 수행을 거쳐 인간다운 인간, 참다운 인간, 깨달은 인간, 신성이
발휘된 인간이 된 것으로 봐야한다. 한 개인의 입장으로 보면 신교문화에서 추구하던 인간상을 성
취하였음에도 더 나아가 가정을 이루는 것을 추구한 것이 바로 ‘주원유잉’이다. 개인적으로 부처
가 되거나 신선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라면 궁극적으로 이뤄야 하는 게 가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접화군생’에서 그 정치성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에서 국가의 큰 동량이 되는
재상, 장군, 능력있는 신하들이 모두 화랑에서 나왔다고 하니 화랑은 다양한 국가조직에서 중요한
인재의 역할을 하였다. 화랑이 신을 체험하고 깊은 수련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국가를 발전시키고
자 하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무릉도원이나 극락왕생 같은 저 피안의 이상낙원에 가고
자 하는 염세적인 성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삼국유사』 「고조선」조를 보면 환웅께서 재세이화·홍익인간을 하실 때 단순히 깨달음을
전하거나 수행을 시키는 방법에 그치지 않고 치밀하게 짜여진 국가체계를 구축하여서 그 교화를
만방에 실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삼백/오가/360여사인데, 이는 자연과 수의 원리가
체계화된 것으로 자연의 정신을 현실 조직으로 구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풍류는 만물의 근원인 신을 체험하고 신을 내려받는 수련문화이지만 언제나 국가라는 틀을 잊
지 않고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한 수행과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앞의 풍류의 의미에서 풍류라는 두 글자를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해석한 것이, ‘현묘지도와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의 세 가지 표현에 대해서 알아봄으로써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
다. 풍류문화의 성격은 한마디로 매우 ‘근원적(궁극적)이며 종합적이고 현실적’이다. 우리는 이러
한 세 가지 속성을 「난랑비서」에서 추출해낼 수 있다.
풍류라는 것은 진정한 대자유인이 되는 삶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모퉁이에
쏠리지도 않고 신선이나 부처를 찾아 고상한 담론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으며, 현상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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