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4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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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2. 요하이동(遼河以東, 만주)설
일십당 주인 이맥(李陌, 1455~1528)은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서 『조대기』를 인용해 “해
모수가 웅심산에 살았고, 부여고도에서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54) 라고 하였다.
고리군왕의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 불리지가 서압록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기뻐하며 장가
들어 고주몽을 낳았다. 임인(서기전 79)년 5월 5일 한나라 왕 불릉(소제) 원봉 2년이다. 불리지가
세상을 뜨자 유화 부인이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가니 지금의 서란(舒蘭)이다. 55)
라고 옥저후 불리지가 서압록을 56) 지나는 내용과 웅심산이 당시 서란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동부
여를 가섭원 부여라고 달리 부르는데 57) 이것은 이미 범장의 『북부여기(가섭원부여)』에서 보이는
바이다. 또한 고추모가 “평락 11년 갑오년(서기전 27)에 북옥저를 멸하고 을미년에 졸본에서 눌견
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지금의 상춘 주가성자”라고 하였다. 58) 가섭원을 이유립은 지금 흑룡강성
통하현으로 보았다. 59)
그림 4) 길림성 서란시(왼쪽)와 흑룡강성 통하현(오른쪽) 60)
54) 이맥(李陌, 1455~1528), 『太白逸史』 「高句麗國本紀」, 朝代記曰 解慕漱從天而降 嘗居于熊心山 起兵於夫餘古都 爲
衆所推 遂立國稱王 是謂夫餘始祖也
55) 이맥, 「高句麗國本紀」, 稾離郡王高辰 解慕漱之二子也. 沃沮侯弗離支高辰之孫也 皆以討賊滿功得封也. 弗離支嘗過西
鴨綠 遇河伯女柳花 悅而娶之 生高朱蒙 時則壬寅五月五日也 乃漢主弗陵元鳳二年也. 弗離支薨 柳花率子朱蒙 歸于熊心山
今舒蘭也
56) 서요하를 말한다.
57) 이맥, 「高句麗國本紀」, 주몽이 장성하여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가섭원을 택해 살면서 관가에서 말 기르는 일을
맡았다.
58) 이맥, 「高句麗國本紀」, 平樂二十一年甲午十月 伐北沃沮滅之 明年乙未 自卒本移都訥見 訥見今常春朱家城子也. 장춘
주가성자이다.
59)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대전: 상생출판, 2012), 「가섭원부여기」 265쪽 측주) 가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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