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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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1
Ⅴ. 맺음말
지금까지 『환단고기』 사료를 통해서 공험진과 선춘령은 ‘두만강 이북 700리이면서 송화강 근처
지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사료에서 공험진과 선춘령이 두만강 이북 700리라고 하면서
설명한 지명들이 지금까지 존속된 지명들이 아니면서 확실하게 위치 비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
지만 『환단고기』에서 제시한 ‘송화강 근처 지역’이라고 하는 한 문장은 공험진과 선춘령 위치를
비정하는 답사와 사료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는 살수가 진한의
남쪽 해안가라는 중요한 역사 지리적인 사료를 제시한다. 고조선의 중심 국가인 진한은 47분의
단군이 2,096년 동안 통치하던 국가이다. 진한은 도읍지를 3번 옮겼는데, 첫 번째 도읍지는 1대
단군왕검부터 21대 소태 단군까지 지속된 ‘하얼빈’이다. 진한은 하얼빈에서 장춘을 거쳐 개원으
로 3번의 수도를 천도하는데 의미 있게 살펴볼 내용은 하얼빈-장춘-개원은 남쪽 방향이라는 것이
다. 도북의 지도상으로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향하는 방위이지만, 진북의 방위로 보면 이는 남쪽
방향이다. 이사를 하거나 천도를 할 때 기후가 따뜻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고조선 제1왕조의 하얼빈에서 제2왕조 장춘을 고쳐 제3왕조인 개
원의 도읍지 천도는 기후와 식량의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천도를 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당시 수도가 하얼빈이었던 4세 오사구 단군 경인(단기
203, BCE 2131)년에 선박을 건설하는 작업을 돕기 위해 전문 일꾼 30명을 살수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살수는 하얼빈에서 남쪽 바닷가였다. ‘남쪽’의 방위는 지금의 방위 개념과는 다르게 보
아야 한다. 보통 지도에서 남북을 따지는 것은 도북상의 방위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도북 개
념의 방위 개념은 지도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명나라, 청나라에 들어와 널리 보편화 되기 시작했
다. 이에 반해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쪽, 해가 뜨는 쪽을 동쪽, 해가 지는 쪽을 서쪽으로 방위의 기준
을 삼았던 진북의 방위 개념이 고대에는 보편적인 방위였다. 따라서 북극성을 기준으로 하는 방위
로 볼 때 하얼빈의 남해는 요하가 있는 방향인 발해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발해만 근처 요하 주변의
강이 살수라는 것을 진북 개념의 방위로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살수는 이병도외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청천강’이 아닌, 고대 압록강이라고 불리었던 요하 수계(水系)인 ‘혼하’
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논문을 통해서 『환단고기』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살수 지역과 공험진 선춘령의 위치를 비정하
는데 중요한 사료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왜곡되고 소실된 사료를 통해 역사지리적인 연구가 어
려운 과정에서 『환단고기』의 사료는 역사지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가에게는 소중한 사료들이
많다고 본다. 『환단고기』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 걸쳐서 연구가 되고 있고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그런 여러 연구 방향에서 역사지리학적인 면으로 본 논문은 거의 없는 와중에 본 논문이 『환
단고기』를 역사지리학적인 방향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조그마한 동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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