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5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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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와 『환단고기』의 유사성에 대한 고찰 송옥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 중
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
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는 전환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고 일렀다. 1)
여기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자가 세종임을 분명히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모양은 옛 글자와 비슷
한 형태를 가지며 글자를 만드는 원리를 초성, 중성, 종성의 세 부분을 하나로 합하여 형성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글과 소리에 관한 모든 것을 적을 수 있다고 하면서 간단하지만 무한한 전환가
능성을 말하고 있는데 간결하면서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소리가 없다는 점에서 훈민정음, 즉 현대
한글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문자창제 3년 후 1446년 음운론의 대가들로 구성된 집현전 학자 8인이 참가한 훈민정음
해례의 기록은 훈민정음의 창제목적, 제자원리 등을 담은 해설서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기록
이라는 이유로 세종의 애민사상 이외에는 국어학적 측면에서의 연구만 계속되었다. 게다가 1940
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훈민정음의 해례, 특히 창제자와 제자원리, 해례본의 진
위 여부 역시 학자들 간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러나 실록에서 분명하게 훈민정음을 세종이 창제하
였다고 적고 있는 점과 정인지를 비롯한 학자 8인이 지은 정음해례가 해례본의 내용과 일치함에
따라 훈민정음 해례의 연구는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
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게다가 해례본이 기록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를 뒷
받침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까지 그 기록 가치를 인정받아 함께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기사에는 세종이 직접 쓴 ‘어제훈민정음’과 정인지 외 학
자들이 작성한 ‘훈민정음해례’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한 해례본
(간송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까지 세종의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에는 애민
사상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였는데 이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참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오류들이다. 더욱이 방대한 분량
의 조선왕조실록뿐 아니라 발견된 해례본 역시 모두 한자로 되어 있고 현대 문법과도 달라 그 본의
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다행히 현재는 조선왕조실록 한글화 작업이 되어
있고 해례본 역시 복원, 해석서 등이 나와 있어 해석에 있어서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자료로써 참고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국어학적 측면뿐 아니라 성리학적 견해와 종교적 견해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 권 102,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
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二終.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sill
ok.history.go.kr)
2) 유네스코와 유산(출처: https://heritage.unesco.or.kr/훈민정음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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