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6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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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자금을 지원한
백산상회와의 비교
평안남북도 교회에서 보낸 독립자금이
8천원, 경주 부호 최준의 동생 최완이
소지하고 있던 현금이 2만원, 임시정부
초기 자금이 10만원 정도였다.
보천교의 독립자금/군자금 지원
보천교에서 발각된 독립자금은 28만원
김좌진 장군 1924년 2만円(8억원), 5만円(20억원) 지원 으로, 실제 보낸 액수는 이를 훨씬 뛰어
정의부 조만식 사건 : 만주 개척사업비 30만円(120억원) 넘을 것으로 보인다.
1918년 제주도 이찬경 : 1만 2천 5백円(5억원)
1921년 방주 김영두 군자금 모집 사취 도주 : 20만엔(80억원)
대한민국 건국과 독립운동 군자금의 사령탑
십일전 부속건물에서 청기와를 떼 가지고 와서 청와대(그린하우스)가 성립.
▪십일전 ➡ 조계사 불교 본부, 청기와 ➡ 청와대
보천교를 모르고서는 20세기 초기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
보천교의 조직 없이는 기미독립만세 운동이 성립될 수 없다.
보천교의 지원 없이는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이 지속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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