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3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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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혁명 3월 1일로 정해진 것은 우연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지

                   3과 1이라는 근본이념은 우리 민족의 고유 이념에 뿌                 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다. 3·1혁명으로

                 리박혀 있다. 우리 민족의 이념은 위에서 말한 바와                    탄생한 임시정부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일제에
                 같이 홍익인간, 즉 인간중심주의이므로 인간은 대                      맞서 자주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써 사명을 다

                 저 아의 견지에서 보면 천·지·인의 삼위일체이다.                     했다. 자칫 끊어질뻔한 국통맥을 27년간 이어

                   이렇게 오늘날 3.1운동이니 3.1절이니 하는 말 자                 갔다.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의 시대정신은
                 체가 어떤 매력을 가진 것만은 틀림없으며 동양에서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다. 이

                 는 고래古來로 삼일이라는 숫자를 길하고 기뿐 행운                     정신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다시 강조되었고

                 의 숫자로 알고 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우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연히 그렇게 된 것을 일부러 이유를 그럴 듯하게 부

                 칠라고 그렇게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그렇게까지 상세히
                 생각하여 이날을 정한 것이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덧  「삼일운동사」, 삼일정신선양회. 1955년 초판
                                                               통합 임시정부의 탄생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  1919년 3월 17일 수립된 러시
                                                               아 블라디보스토크 임시정부.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
                                                               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어 ‘대한국민의회’로 이름을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20일

                                                               쯤 뒤인 3월 17일에 공식 선포가 이뤄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하이)  임시정부 설립 주체인 임시
                                                               의정원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부터 10개조로 이루
                                                               어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철야 심의한 후, 4월 11일 오전

                                                               반포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상하이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한성정부  1919년 4월 23일, 24인의 국민대회 13도 대표
                                                               자들이 ‘국민대회 취지서’를 발표하고, ‘임시정부 선포문’을

                                                               당시 세계적 통신기관인 연합통신을 통해 국내외에 알렸다.

                                                               1919년 9월 11일 통합 임정이 탄생했다. 통합임정은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그 내각을 승계하고 위치는 상

                                                               하이에 두며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하여 노령정부를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국통맥 특집 | 대한민국 임시정부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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