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P. 152

북부여의 고두막단군과 동부여의 해부루왕



             북부여 4대 고우루 단군 재위 13년(BCE 108)에 한                 동명왕 고두막한은 고우루 단군 재위 34년(BCE

           무제군은 북부여 서쪽의 위만정권을 멸하고 대군을                       87)에 사람을 보내 “나는 천제의 아들이로다. 장차
           이끌고 공격해 온다. 고우루 단군은 제대로 침략을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막지 못했다. 이때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격                     하시오”라고 기별한다. 고우루 단군은 근심과 걱정

           파한 인물이 동명국의 고두막한이었다.                             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게 되고,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즉위하게 된다. 이런 기록은 『환단고기』와 『삼국유
             계유십삼년 한 유 철 관평나 멸우거
             癸酉十三年 漢劉徹 寇平那 滅右渠                              사』에 나온다.
             잉욕역치사군 성이병 사침                                    결국 고두막한에 밀린 해부루왕은 동쪽 가섭원
             仍欲易置四郡 盛以兵 四侵.
                                                            땅으로 이주해 동부여를 열게 된다. 이로써 해모수
             어시 고두막한 창의기병 소지 연파한구
             於是 高豆莫汗 倡義起兵 所至連破漢寇                            의 혈통인 전기 북부여가 문을 닫고, 고두막한의 혈

             재위 13년 계유(BCE 108)년에 한나라 유철이 평나                통인 후기 북부여가 열리게 된다. 이후 동부여는 금

             를 침범하여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을 설                      와왕(2대), 대소왕(3대)에서 끝을 맞게 되고, 대소왕
             치하려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사방으로 쳐들어                       자와 경쟁한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해 북부여 고무

             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                     서 단군의 사위(소서노와 결혼)가 되어 북부여를 계승

             르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였다.                          하게 된다.

              덧  『환단고기』 「북부여기」





                                                                            동명왕 VS 동명성왕

                                                                            한나라가 위만정권을 치고 이후 한
                                                                            사군을 설치하려 북부여를 쳐들어
                                                                            온 위급한 상황에서 고두막한이 의

                                                                            병으로 나서서 나라를 구하고 한무
                                                                            제를 물리쳤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한족 사가漢族史家들의 붓대놀림으
                                                                            로 승자인 동명왕 고무막한의 이름

                                                                            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거기에다 고두막한에 대해서 우리
                        가 잘 모르는 또 다른 이유는 동명성왕(고주몽)과 동명왕(고두막한)을 혼동해서이다. 이 둘을 같이 여기다
                        보니 어느새 동명왕인 고두막한은 사라지게 되었다. 동명왕과 동명성왕은 다른 인물이다.







           152   대한사랑 4355. 0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