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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특별기고) 이땅의 주류사학계는 왜 가야를 부정하고 임나일본부를 옹호하는가? (2부)

 이매림 (사) 미사협 공동대표 (사) 대한사랑 수석본부장

일제는 그들이 만든 조선사를 1920년부터 본격 공개하며 시행한다. 또한 완전한 대중화를 위해 조선총독부와 직간접적인 연구단체와 함께 조선인 역사의식 교육에 돌입하며 궁극적으로는 경성제국대학까지 만들어 침략사관인 식민사관의 전파자들과 옹호자들을 양육해 나간다.
조선사학회, 사담회(史談會), 조선사학동고회(朝鮮史學同攷會), 경성독사회(京城讀史會), 청구학회(靑丘學會)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朝鮮總督府 學務局의 역사교과서편찬과'國史/朝鮮史’ 교육 /나가시마 히로키(永島廣紀)(제2기 한일역사 공동연구 보고서 제6권)>

그들은 1920년부터 차츰 조선 사람들을 일본의 신민들로 동화시키는 역사교육을 강화시켜 나간다. 아직도 한국의 주류사학계에서는 자신들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을 벗어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했다고 공공연히 자부하며 자기들의 사관과 다르면 “유사사학, 국뽕, 환빠”라는 프레임을 씌어 자신들의 카르텔 방송사와 신문사를 통해 신나게 공격하고 있다. 

이제 다음에 첫 공개하는 <일제 조선사 교육 내용>을 보고 국민이 판단을 해 보시길 바란다. 그동안 잘못된 거짓정보로 주류사학에 동조한 사람이 있다면 객관적 자료를 통해 판단해 보길 바란다.  그들이 왜 단군조선과 삼국의 건국사, 가야 건국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지를 알게 된다.
   
당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하달된 지침>을 살펴보자. 
교수지침이 들어 있는 尋常小學國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교수참고서)이다.

먼저 상고시대 조선반도의 교수요지(敎授要旨)는 이렇다. 자료출처는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 넷이다.


 


<교수지침 내용>
 

본 과(課)에서 조선반도의 연혁은 북부와 남부가 크게 다르다. 북부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통치했으며, 따라서 중국의 속국(屬國) 또는 영토였다는 사실을, 남부는 곧 조선인의 조상인 한족(韓族)의 거주지로서, 이 지방은 일찍부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단군>에 대해서는 이렇게 교육지침이 정해져 내려갔다.

‘조선반도에 나라를 세운 것 중에 가장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것 은 앞서 적힌 기자(箕子)이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단군(檀君)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왕왕 믿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 한 마디 해야 한다’… ‘이조시대 유명한 학자로서 그 전설의 妄誕不稽을 믿기에 족하지 않다는 것 또 그 전설이 승려의 손으로 날조되어진 것이라고 논하는 것이 적지 않다. 근래 내지의 학자 역시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본서는 이 전설을 채택하지 않는다
(교사교육매뉴얼≪尋常小學日本歷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권1 / 조선교 육연구회 편, 1920년 4월, 권2 / 1922년 12월) 및 ≪普通學校國史敎授參考書(朝鮮事歷敎 材)≫(1923년 3월))

<한사군> 교육은 당연히 따르는 필수였다.

한나라는 당시 중국에 있던 대국(大國)이었는데, 무제는 우거가 자기의 명령을 위반했으며, 또한 그 사신을 공격하여 살해했다고 하여, 군대를 보내 위만조선을 쳐서 멸망시키고, 그 땅에 4군(四郡)을 설치했다. 기자 때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 상태였지만, 이때에 이르러 완전히 중국의 영지(領地)가 되었다. 이때 우리나라[일본]는 가이카(開化) 천황【제9대】시대였다. 4군은 후에 2군이 되었으며, 중국의 영토였던 것은 약 420여 년 동안이었다.
(尋常小學日本歷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사군,낙랑군이 420년간 식민지를 한반도 북부에 설치한 것으로 전시하고 있다.


<임나와 가야>에 대한 교육지침은 아래와 같다.


 

임나(任那)와 가라(加羅)의 국명(國名)

임나(任那)라는 국명(國名)은 조선에서도 옛날부터 보인다. 또한 이를 임나가라(任那加羅)라고도 불렀다. 

(1) 고구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성경성(盛京省) 집안현(輯安縣)에 있다.】 “임나가라 종발성까지 쫓아갔다."
(2) 신라 정경대사탑비(貞鏡大師塔碑) 【원래 창원군 봉림사지(鳳林寺址)에 있다.】“대사의 휘는 심희이고, 속성은 신라 김씨이다.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었다."
(3) 『삼국사기』의 강수 열전(强首列傳)“신은 본래 임나가량 사람이다."

이 나라는 옛날에 경상도 김해(金海)에 있던 가라국(加羅國)과 동일하며, 일본의 고서에 나오는 의부가라(意富加羅)가 곧 이것이다. 가라(加羅) 즉 임나(任那)는 먼 옛날부터 일본에 조공을 바쳤으며, 일본이 삼한과 교류하는 문호로서, 일본에서는 항상 조선반도의 남부에 있는 가라 등 여러 나라들을 총칭하여 임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옛날부터 임나에는 광의(廣義)와 협의(狹義)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서에서는 김해에 있던 나라를 가라(加羅)라고 이르고, 임나는 넓은 의미에서 임나 제국들을 이를 때에 한하여 사용한다. ‘가라’라는 것은 원래 한족(韓族)의 거주지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 가운데 마한과 진한의 거주지는 백제, 신라의 두 나라가 되었으며, 이 두 나라의 어디에도 통합되지 않은 지방에는 ‘무슨무슨 가라’라는 이름의 작은 나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김해의 가라국도 그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는 이 ‘가라’라는 이름을 후대(後代)에 이르러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조선과 땅이 닿아 있는 중국도 포함하게 되었다.(尋常小學日本歷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

아래는 현재 사용하는 일본대백과 사전의 임나의 범위 지도이다.

 

<일본 소학관에서 발행하는 ‘일본대백과전서’에 실린 임나지도.  시기별 임나의 범위를 그렸다.>

위의 지도는 임나의 초기 범위가 4세기 정도에는 충청도지역까지였으며 5세기경에는 전라지역까지 축소되었고 6세기경에는 현재 경상도 가야 지역이었다고 표기하고 있다. 

임나에 대해 이렇게 강의하라고 요령을 제시하였다.

일본부 1 강의요령[說話要領]

일본과 삼국(三國)의 관계

진구(神功) 황후는 신라를 친히 정벌하시고 그를 복종시키신 다음,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도 복속시켰다는 것은 이미 서술했다. 이때 조정은 일본부를 임나(任那)에 설치하고, 장군을 보내 장(長)으로 삼아 한족(韓族)의 영토를 다스리셨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은 모두 일본에 조공했는데, 특히 신라와 백제 두 나라는 왕족을 일본의 조정에 볼모로 보냄으로써, 속국의 예를 다하는 성의를 보였다. 

일본부 2 강의요령[說話要領]


일본과 신라의 관계 : 신라는 진구(神功) 황후의 친정(親征)으로 일단 일본부에 복속된 후에도 항상 임나 제국(諸國)을 침략하여 국토를 확장했다. 또한 여러 차례 일본에 대한 조공을 게을리 했으므로, 일본에게 원정을 당한 적이 빈번했다. 그런데 법흥왕(法興王) 【제23대】 때에이르러국력이점차강해졌으며, 모든 방면의 제도도 정비되었다. 

 신라의 흥기: 신라는 진흥왕 시대가 되었으며,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국토가 크게 팽창했고 세력이 점차 강해졌으므로, 마침내 모두 일본부의 보호를 받던 임나 제국들을 아울러 빼앗으니, 어쩔 수 없이 일본부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수(隋)·당(唐)과 삼국의 관계: 고구려는 군대를 서쪽으로 보내 수나라의 영토를 침략했다. 수나라 황제는 크게 노하여 고구려 공격. 당(唐)나라가 수나라를 잇자, 고구려와 더불어 신라, 백제 두 나라도 함께 당나라에 대해 신하의 예를 취했다.(尋常小學日本歷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


어떠한가? 과연 주류사학자들 주장대로 광복 후 한국사는 식민사학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가? 현재 한국사 교육이 식민사학을 더욱 심하게 주장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가?

임나일본부가 성립하기 위한 첫 전제조건은 한반도에서의 삼국의 국가성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때 신공황후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공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 주류사학계에서는 공공연히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여러 학자들이 시민들 앞에서 앵무새 노래하듯 지금도 반복하여 주장한다. 그 결정체가 47억 국민들 세금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이다.  


<동북아역사지도, 서기 3세기가 넘어서는데도 아직 백제와 신라가 개국되지 않았다>


영국박물관 한국관 역사연대표에는 고조선이 없고 원삼국 표기가 되어있다. AD 300년까지는 원시 삼국이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고고학적 표현이 원삼국이다)

 

부산박물관 가야 특별전 설명을 보면 3세기까지는 가야가 아닌 변한의 소국들이 존재한다. 가야의 초기기록은 삼국유사에 있으므로 삼국유사 (초기기록) 불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국민에 대한 임나일본부 조선사교육은 광복 후에도 계속 조선사편수회에서 교육된 조선인들에 의해 계속 진행되는데 지금까지 한국 주류사학계가 유지하고 있는 확고한 틀이 쓰에마쓰 (末松保和)에 의해 만들어진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1949)의 임나이다.


쓰에마쓰는 임나에 관련된 지명을 전부 한반도 남부로 비정하였다. 즉 한반도 남부는 반드시 일본의 고대 식민지라는 것이다. 그의 비정은 연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억지였다. 차라리 그 임나 지명을 큐슈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이다.

안라(安羅)   안라(安羅)는 함안(咸安)으로 비정
가라(加羅)   경상남도 고령(高靈)으로 비정
졸마(卒麻)   경남 김해시 생림면 미사리의자연부락인송촌(松村)은 솔밭의 골짜기 한 부락인 솔마리(率馬里)로 비정
산반해(散半奚)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草溪)로 비정
다라(多羅)  경상남도 합천 지역으로 비정(합천의 옛 이름이        
            대량(大良) 또는 대야(大耶)와 비슷해서)사이기(斯二岐)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로 비정자타(子他)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비정
고차국(古嵯國) 경상남도 창원 지역으로 비정
걸손국(乞飡國) 지금의 창원시 혹은 산청군 단성면 등에 비정 
 (김태식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임례국(稔禮國)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渭川面)

그의 임나 지명은 가히 초인적 수준이다. 한반도 남부 경상도 지역이 죄다 일본 식민지 지역이다. 그럼 지금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 후손들인가?

한반도 내 임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좀 더 세분화하면 이렇다.

☞일본이 가야 지방에 일본부를 두고 가야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설. (스에마쓰 야스카즈, 이시모다 다다시,야기 아쓰루, 기존일본학계의 통설)
☞가야 지방의 일본인을 관리하기 위해 일본 조정이 세운 기관이었다는 설.(이노우에 히데오)
☞교역을 위해 양국이 교류한 흔적(교역기관)이라는 설. (이병도, 이근우, 김태식, 요시다 아키라)

몇 년 전 임나일본부 관련 이덕일 소장과 법적 송사가 붙은 김현구 전 교수의 임나 비정과  쓰에마쓰 비정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 김현구 전 교수와 쓰에마쓰의 임나지명 비정 비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임나4현(상타리,하타리 등)과 기문,대사는 임나일본부를 표시하는 주요 지명이다.


최근에는 그동안 <임나 4현>이라고 주장하는 순천운평리 고분군에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왜계 유물은 없고 대가야계 유물만 발굴되어 임나 4현도 거짓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추종자들은 계속 그 지역이 임나 4현이라고 별별 주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의 대표적 인물이며 한국 사학계의 거두 이병도박사의 스승인 쓰다 소기치(津田佐右吉, 사진)도 학자적 양심이 있을 때는 “신공왕후의 삼한 정복설은 가공이며 괴이한 헛소리”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 발언 이후 일본의 우익세력과 3류 사무라이들의  극심한 견제와 생명의 위협을 당했으며 결국 일본 우익세력에 의해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 그는 지금까지 와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 시대와 야합하여 일왕이 다스리는 일본제국을 위해 고대역사 조작에 앞장 섰으며 일본서기에 백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이 근초고왕, 신라는 내물왕이기 때문에 그 이전 역사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였는데 급기야 ‘삼국사기 및 고대 한국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조작서임으로 절대로 보지도 말고 참고도 하지 말라’는 발언으로 일본우익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으며 그 공로로  1949년 일왕으로부터 문화훈장 수여 받았다.

일본 지식인들은 신공황후를 가공인물로 평가

일본 고대사에 정통한 지식인들은 그동안 일본서기에 가공된 인물인 신공황후의 실제 모델이 누구일까를 연구하여 왔다. 그들이 주목한 인물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은 야마타이국(사마대국)의“히미코”라는 여왕이었다.

“107년 왜의 면토국왕(面土國王)이 조공했다. 180년대 왜국에 대란이 일어나 그 난리 속에서 30여개 소국들의 공립으로 야마타이국의 히미코가 왕이 되었다. 239년 히미코는 위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칭호와 금인을 하사하였다. 구나국와 대립하고 있던 히미코는 240년, 243년 위나라에 사자를 보내와 원조를 요청했다.” <위지 왜인전>  히미코 기록

중국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는 야마타이(邪馬台國)국 여왕 비미호(卑彌呼 :히미코)로, 삼국유사에는 세오녀(細烏女), 고사기에는 난생녀(卵生女), 김해김씨 왕세계에는 신녀(神女)로 기록된 인물은 생존연대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당시 열도에서 발굴되는 유적은 가야계 유물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가야계 인물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북규슈 일대에서 29개국 5만호를 평정하여 야마타이국의 여왕이 된 묘견공주” 
(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일본국가의 기원>)

일본 왕실의 조상이 한반도 가야계였다
(사다키치(喜田貞吉), 우에다(上田正昭), 에가미(江上波夫))


‘신대(神代) 이전에 이 곳에 온 것으로 알려진 신공왕후는 대륙에서 도항해 올 때 용맹스러운 수군을 이끌고 왔으며 신덕(神德)을 갖춘 왕족이었지 않나 추측되며, 따라서 저중표(底中表)라는 삼신(三神)이 삼한(三韓)이나 대륙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북규슈 후쿠오카(福岡)시 하카다구(博多區) 신공황후 신사  스미요시신사(住吉神社) 안내책자)


당시에 일본열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가야문명권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주목한 인물이 바로 김수로왕과 허왕옥의 둘째 딸인 “묘견공주”였다. 역사에 히미코라고 기록된 여왕의 문화는 김수로 문화와 너무 흡사하다.


< 김해 가야문화와 히미코 관련성>

그리고 김수로왕과 허왕옥의 일곱 아들도 일본열도로 진출하여 일본역사의 시작점이 된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일본 역사학회 특히 우익계는 딜레마에 빠진다. 역사기록상 실제인물 히미코와 일본서기 기록상의 가공인물 신공왕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 였다.

특히 그녀가 여왕으로 있었던 야마타이국(사마대국 또는 사마일국, 邪馬臺/壹国, '臺'의 경우 やまたいこく)에 대해서는 그 지역이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이 대립 중에 있다.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도쿄대학과 규슈대학 학자들은 규슈 지역설을 주장하고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학자들은 긴키 지역설을 주장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두 가지 설도 만세일계의 천황가 역사기술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규슈설을 취하면 야마토조정의 통일 이전에 별도의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이 되어 만세일계에 치명타가 되고, 기나이설(畿內)을 취하면 일찍부터 야마토조정이 통일했다는 것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야마토조정이 중국왕조에 조공하면서 신하의 나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기에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리고‘규슈설은 가야인들이 주축이 된 국가라는 것이고, 기나이설은 후에 백제인들이 주축이 된 국가란 의미이다. 그렇기에 만세일계의 천황의 황국사관에서는 히미코라는 가야계 인물은 난처한 인물인 것이다.


올바른 가야사 인식만이 임나일본부의 허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이제 임나일본부에 대해 정리를 해보며 마무리를 지어보자.

일본제국주의가 조선대륙의 지배논리를 만들기 위해 확대 재생산한 역사논리가 일본서기 신공왕후의 삼한정벌 기록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과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발굴된 유적은 결코 조선대륙이 결코 신공왕후의 공략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또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가야계의 강력한 여왕이 신공왕후 이전에 존재했다는 자체가 만세일계의 강력한 황국사관 정립의 저해 요인이기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가야사를 일본사로 만들어야 하는 필연적이며 필요충분조건의 역사였다. 

그렇기에 일본의 정한론 주장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임나 지역을 한반도 내로 비정 할 수밖에 없었고 그 타켓이 가야였다. 철기문명도 없었고 바다를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선박 기술도 없었으며  또한   아직 강력한 국가단계가 아닌 100여개의 소국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었던 야마토정부가 바다를 건너 고구려, 백제, 신라를 복속하고 가야에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자체가 희망이며 꿈인 것이다.

 더욱이 아직 국가명도 왜라고 칭하던 시기였고 7세기에 ‘일본’이란 국가가 생겼던 시기에 이미 한반도에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었다고 인식하는 자체가 비정상의 논리인 것임을 스스로가 알 것인데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임나일본부설”에 심지 불을 붙이고자 하는 정성어린 태도는 진짜 일본 열도의 신들이 감동할 만 하다. 

그렇기에 임나일본부 정사 형성에 가장 큰 저해인 가야 건국사는 반드시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초기 역사인 천조대신과 소잔오존의 역사인 고천원의 역사무대가 한반도의 남부 가야 땅으로 계속 좁혀져 들어오는 상황에 더 이상 가야 건국사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 실정이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가야사복원에 희망을 품은 국가 통수권자의 뒷통수를 치며 임나일본부를 부활시키는 행사로 만들며 한순간에 친일파로 만들어 버린 것이 작금의 “가야 전시회의 실상”이라고 판단된다. 

진짜 가야사 복원만이 임나일본부의 허상을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가야 건국사를 '유사사이비 사학'이라고 이자 저자들이 언론을 타며 주장했는데 주장자인 그대들은 누구인가? 정령 신공왕후의 후손, 임나일본부의 자랑스런 후손들임을 실증사학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그렇게들 '유사사학‘ 호들갑을 떨었는가?

동북공정으로 북한지역을 중국(지나) 영토지역을 주장하고 남부는 임나일본부의 일본의 고대 식민지 영토라는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1923년의 조선사학회의 교재내용이었다. 

 

< 북은 지나의 영토, 남은 일본의 영토로 표기한 1923년 조선사학회 교재>

그 역사관이 한반도의 위기 속에서 또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역사왜곡을 넘어 한반도 유사시 영토영역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논리임을 누구도 알 것이다. 바로 국익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존권과 연결된 역사논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알면서도 단군조선 건국부정, 임나일본부설 논리를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걷어 내어야 할 최고의 적폐존재인 것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역사교훈을 이번 <가야사 파동>으로 국민들이 각성하는 시간이 되고 가야사 복원의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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