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 제1공작대와 오한치(熬漢旗·오한기)박물관의 합동발굴팀은 지난 7월 초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 오한치의 싱룽고우(興隆溝·흥륭구) 유적 제2지점에서 5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소남신상(陶塑男神像: 흙으로 구운 남신상)’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요하문명의 대표적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紅山文化)’ 유적에서 여신상은 발굴된 적이 있지만, 남신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민일보·CCTV 등 중국 언론들은 “5300년 전의 조상 발견”, “중화조신(中華祖神) 찾았다”는 내용으로 발굴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요하문명을 연구해 온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최근 중국 방문을 통해 이번 남신상의 실물과 발굴 장소를 직접 확인한 후, 그 내막을 공개했다.
남신상이 발견된 츠펑시 오한치 부근은 고조선 이후 부여족, 예맥족 등의 활동무대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족과 호랑이족의 활동권역이기도 하다. 즉, 홍산문화권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기도 한 것이다. 우실하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남신상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조상신’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북공정’의 또 다른 버전=요하는 만주 남부 일대에 흐르는 강이다. 중국 문명의 기원은 대개 황하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요하문명은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서고 발달된 문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산문화는 요하문명의 다양한 신석기문화 중 가장 많은 유적·유물이 발견된 대표적인 문화권이라고 한다.
중국이 요하 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우 교수에 따르면, 요하문명권 곳곳에서 고도로 발달된 신석기 문명을 보여주는 여신묘와 돌무지무덤, 탄화된 기장과 조 등이 발굴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의 일환으로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사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다.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뿌리로 규정하는 시도를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라고 부른다. 우 교수는 “‘요하문명이 중화문명의 발상지’라는 내용의 논문이 대거 발표되고,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잇따라 신축 개관했다”며 “이번 남신상 발굴에 쏠린 중국학계의 관심도 이 같은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요하문명 홍산문화는 동북아 공동의 기원”=홍산문화로 대표되는 요하문명의 특징은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한민족의 선조인 북방민족들의 생활상과 그대로 연결된다.
우리 민족 문화와도 관련이 깊은 요하문명을 중국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영역’이자 ‘중화민족의 실질적인 기원지’로 단정해선 안된다는 것이 우 교수 주장의 요지다.
우 교수는 “이번에 남신상이 발견된 홍산문화의 주 토템은 곰인데 우리와 관련이 깊은 이 지역의 역사를 중국의 의도대로만 해석한다면, 고조선·고구려 이하의 한국사 전체가 자동적으로 중국사의 방계 역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요하문명·홍산문화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라, 동북아 공동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구 전 선문대 역사학과 교수는 “중국이 예전에는 ‘동이족(東夷族)’ 문명으로 규정했던 요하지역의 역사를 이제는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한국 학계의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요하문명(遼河文明)·홍산문화(紅山文化)=요하문명은 중국 만리장성의 동북쪽 요서와 요동 지역에 존재했던 신석기·청동기 문명이다. 소하서문화(B.C. 7000-6500), 훙륭와문화(B.C.6200-5200), 부하문화(B.C.5200-5000), 조보구 문화(B.C.5000-4400), 홍산문화(紅山文化: B.C.4500-3000) 등이 이 지역에서 꽃피었다. 홍산문화는 요하문명의 대표 문화로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와 랴오닝성 조양시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