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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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역사
세곡선을 정지시킨 관찰사
글. 한태일(한역연구소 소장)
봄은 오고 또 오고 풀은 푸르고 또 푸른데
나도 이 봄 오고 이 풀 푸르기 같이
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 노모를 뵈오려나.
유배지에서 고향에 계신 늙으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사노친곡(思
老親曲)」12수 중 제1수이다. 이 시조를 쓴 사람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이담명(李
聃命, 1646~1701) 선생이다.
선생은 본향이 광주(廣州)로 인망과 학식이 높아 예조참판, 대사헌 등을 지냈
다. 1680년 경신환국 때 부친인 이원정이 참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 억울하
고 원통하여 부친의 피 묻은 적삼을 복권될 때까지 10년 동안 입고 다녔을 정도
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 후 선생은 유배 되었을 때 “나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떠나야 하니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구
나.”라며 팔순 노모를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가 바로 「사로친곡」이다. 이렇게 효
성이 지극한 선비였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남달랐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던 수많은 목민관들이 있었
지만, 선생처럼 아사 직전의 백성들을 극적으로 살려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야기는 없을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1690년(숙종 16) 7월, 선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영남지방
에서는 대기근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전라도에서 올라오던 조세로 거둔 곡식을 가득 실은 세곡선이 낙동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관찰사 이담명이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한양으로 가던 세곡선을
정지시켜 배에 가득히 실린 곡식들을 굶주린 백성들에게 다 나눠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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