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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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결합된 형태로 국 왕조가 바퀴면서 멸시하여 타칭되었
설명된다. 고구려 유민들이 주도권을 잡 던 종족명이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
았으나 말갈인 역시 중요한 구성원으로 와 신라변방인마저 말갈로 기록하고 있
참여하며 정치적, 문화적 융합이 이루어 는 것은 변방인이라는 의미를 빌린 것으
졌다는 것이다. 이는 발해의 지배 계층이 로 대체로 ‘말갈’이라는 종족명은 6세기
고구려계 인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배 이후에나 등장한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
방식을 말갈의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 운 다 하겠다.
영하는 방식에서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구당서』에는 “발해의 풍속은 고구려
발해인의 고구려 계승성은 여러 부문 및 거란과 같다”고 전하는데, 대체로 관
에서 나타나는데, 기본적으로 영토와 주 혼상제를 의미하는 풍속이 같다는 것은
민의 계승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발해 생활 공동체로 상당 기간 함께 하고 있
영토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차지 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언어까지 풍
하고 동북쪽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였는 속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데, 고구려의 1.5배, 신라의 3~4배에 해 고구려와 발해가 같은 언어였다는 점은
당하는 한국사 최대의 영토로 분석되고 『속일본기』에서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언
있다. 종족계통 역시 고구려인들의 계통 어 뿐만 아니라 문화적 보수성이 강한
과 관련된다.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고분에서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가
강하게 계승한 국가로서 특히 지배층의 많이 비교되는데 정혜공주묘, 정효공주
구성에 고구려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발 묘, 삼령분 등과 같이 발해의 왕릉 및 지
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받아 고구려 배층의 석실분은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
식 정치 제도와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구려에서
켰는데, 특히 고구려계 지배층의 정체성 사용되던 온돌이 발해에서도 발견되고
과 고구려 중심의 역사 인식이 발해 국 있다는 점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
가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다만, 중요 는 중요한 근거이다.
한 문제인 말갈은 고구려의 피지배주민 발해가 고구려와 풍속이 같았다는 기
에 대한 멸시어이자 당나라 동북방 주민 록, 발해어가 고구려어를 계승했다는 사
들을 통틀어 부르는 범칭이었다. 발해가 실 및 고구려인의 주거특징인 온돌장치
‘진국’으로 건국되었을 때, 당나라는 발 가 발해주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점 등
해를 말갈이라 멸시하여 불렀으며, 더불 은 문화적으로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
어 이전의 숙신과 한 대의 읍루 등은 중 한 국가라는 증거들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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