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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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판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왔으며,
신시내티에서 신식 인쇄기를 들여왔다. 헐버트가 책임
자로 있던 삼문출판사는 그가 부임한 지 1년이 안 되
어 전도지와 종교 서적 1백만 여 면을 인쇄하여 경영을
자급자족할 수준에 이르렀다. 1895년 2년간 휴간했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을 다시 발행하였고, 최초의 영
문 소설 한국어 번역판인 「텬로력뎡(천로역정天路歷程)」을
출판하였다. 그해 8월에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하
텬로력뎡(천로역정 天路歷程) 였다.
1896년 4월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
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또한 배재학당에서 가르쳤던 제자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며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를 도입했으며 국문연구
소의 필요성을 고종에게 여러 차례 건의하기도 했다.
한국 역사에서 관심이 많았던 영원한 대한인
한국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1903년에 윤기진이 쓴 조선 역사서 『대
동기년(大東紀年)』의 출판을 도왔고, 1908년에는 관립중학교의 제자 오성근과 함
께 『대한역사』라는 순 한글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상, 하권으로 기
획되었으나 하권은 출간하지 못하고 상권만을 발행하였다. 이마저도 1909년 일
제의 검열로 금서 조처되어 일본 경찰에 의하여 출판사에 있던 책이 모두 몰수되
어 불태워졌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중근은 일본 경찰에게 조사받
던 1909년 12월 2일에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대한제국 시대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영국인 어
니스트 베델과 더불어 헐버트를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
도 했다.
195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외국인 최초로 건국 공로 훈장 태극장을 추서하였
고, 2014년에는 한글학자이자 역사 연구가로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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