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P. 116
태극기가 공식 제정되기까지 과정
1876년 1월 조일 강화도 조약 국가의 상징인 국기가 마련되지 않음
미군 제독 슈펠츠의
1882년 5월 14일 국가간 조약 체결에 조선 국기 사용을 요청
요청
역관 이응준과 김홍집이 제작한 태극기 사용.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년 미해군에서 간행한 『해양 국가의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깃발들 (Flags of Marintime Nations)』에 실린
태극기 도안이 확인됨
고베 수신사 숙소 누각에 박영효가 태극기 게양
©박영효의 『사화기략』
제3차 수신사 일본 일본외무성 요시다 기요나리가 영국 공사 ‘해리
1882년 8월
방문 파크스’에게 보낸 문서 중 태극기가 포함됨
(박영효가 각국 공사에게 배포한 태극기로 추정)
©영국 국립문서 보관소 소장 (외교)문서
조선 정부는 태극기를 공식 국기로 반포
1883년 3월 공식 국기 반포 -승정원 개수 일기에 국기 반포에 대한 왕명이
실림(1883년 3월 6일)
04. 태극기를 중국 사신이 설계했다고?
2016년 중국의 모 TV 퀴즈쇼에 황당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한국 국기를 설
계한 중국의 유명한 외교관’ 이란 퀴즈가 제시되는데, 그 정답이 ‘마건충’이었습
니다. 왜 이러한 황당한 내용이 방송되었을까요? 중국과 한국 일부 인사들이 마
건충이 ‘태극기 제작에 크게 개입했다’ 또는 ‘태극기의 고안자’라고 주장했기 때
문입니다.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조선 관리와 마건충이 회담했던 내용을 묶어
놓은 『청국문답』(청사 마건충과 전권대관 신헌의 국기에 관한 남관문답(淸使 馬
建忠과 全權大官 申櫶의 國旗에 關한 南館問答 謄 1, 別 冊))이라는 문집에서 시작
됩니다. 여기에 보면 1882년 음력 4월 11일 마건충은 회담에서 조선 국기에 대
해서 ‘태극도’와 ‘팔괘’를 발언하는데, 이를 확대 해석해서 마건충이 태극기의 실
제 설계자라는 주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팩트 체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조선은 성리학이 지배 이
114
월간대한사랑_8,9호_본문(인쇄).indd 114 2024-07-22 오후 1:5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