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P. 103

2024. 05


                하고 결국 자진을 하게 된다. 서일 장군은 만                   띠고 있었다. 만주 지역이 추운 곳이라, 좀 따

                40세의 나이에 파란만장하고 안타까운 생을                     뜻하시라고 옷을 두툼하게 해드리는 마음으
                마감하게 된다. 1921년 9월 28일의 일이다.                 로 석상을 조각했다는 복기대 교수의 말에

                  서일 장군은 밀산에 안장되었으나,대종교                     장군을 향한 존경심과 애정의 마음이 느껴졌
                의 1대 나철 종사와 2대 김교헌 종사가 잠들                   다. 강의가 끝난 후 서일 장군의 후손들에게

                어 있는 길림성 화룡시 청파호(靑波湖)로 이장                   소감을 여쭈니 ‘너무 기쁘고, 본인들 힘으로
                한다.                                         이렇게 모실 수가 없는데, 많은 도움을 주셔
                  박환 교수는 이 삼종사의 묘를 바라보면                     서 너무 감사하다’는 기쁨과 감사의 뜻을 표

                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끊                     했다.
                임없이 항일투쟁을 계속 전개했음을 느꼈다                        참석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서

                고 했다. 서일 장군과 잊혀진 많은 독립운동                    일 장군과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가들을 알아야 한다며 특강이 마무리됐다.                      역사의 현장이었다. 반드시 역사광복을 이루

                대한민국 정부는 백포 서일의 공훈을 기려                      어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정의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석상에 드러난 서일 장군은 온화한 미소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왼쪽부터 정길영 관장, 증손녀 서옥란님, 손주며느님





                                                                                                 101




       월간대한사랑_6호_본문.indd   101                                                                2024-04-29   오후 12:57:22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