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월간 대한사랑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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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처음에는 에리둑, 다음에는 바드티비라, 라라크, 시파르, 슈루파크 등
            으로 왕권이 차례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리고 대홍수가 있었고 그 후에는

            키쉬, 우루크, 우르 등으로 다시 왕권이 옮겨갔다고 한다. 이는 수메르를
            지배한 패권 도시들의 명단인 셈이다. 〈수메르 왕명록〉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홍수는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
            자들은 수메르 도시들의 지층에서 사람 사는 흔적이 없는 모래와 진흙이

            뒤섞인 퇴적층을 발견하였다. 말하자면 홍수층인데 그 아래에는 토기조각
            등 인간의 주거흔적이 나왔다.



            대표적인 수메르 도시국가와 계보

              수메르 도시들 가운데 유명한 도시들을 몇 개 들어보자. 우루크는 〈수
            메르 왕명록〉에 의하면 수메르를 다섯 번에 걸쳐 지배한 도시였는데, 《길

            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가 바로 우루크의 왕이었다. 길가메시
            가 나오는 또 다른 문헌에서는 우루크와 키쉬가 수메르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당시 키쉬 왕은 우루크가 키쉬의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자 왕인 길가메시는 연장자들의 회
            의를 소집하여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연장자 회의는 키쉬에 굴복하고 평

            화를 택할 것을 주장하였다. 길가메시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이번에는 젊
            은이들로 이루어진 전사들의 회의를 소집하여 그 의견을 물었다. 전사들

            은 무기를 들고 싸우자고 하였다. 길가메시는 젊은 전사들의 결정에 흡족
            해했는데 길가메시에 관한 이러한 기록을 크레이머 박사는 기원전 3,000

            년경에 우루크에 이미 민주주의 제도인 양원제가 있었던 증거라고 보았
            다.

              수메르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도시는 우르이다. 우르는 〈수메르 왕명
            록〉에 의하면 세 번에 걸쳐 수메르를 지배하였던 도시였다. 페르시아만에
            접한 해안 도시였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에는 오늘날에 비해 2.5m나

            해수면이 높았다고 한다. 그 후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낮아지고 토사도 쌓
            여 우르 지역은 바다에서 250km나 떨어진 내륙 도시가 되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족장 아브라함이 바로 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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