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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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1



                              강의 위치가 바뀌면 당연히 서희장군의 강동 6주 위치도 바뀌게 된다. 당
                              시 서희(徐熙)와 소손녕(蕭遜寧)의 외교 담판상황을 알아보자.

                                소손녕은 고구려 땅이 거란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고려가 영토를 침범
                              하였고 바다를 넘어 송(宋)을 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역설하며 땅을

                              요구하였다. 이에 서희는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임을 주
                              장하며, 현재 거란의 동경도 우리 영토임을 강조한다. 또한 고려가 송나

                              라와 교역하는 것은 압록강의 안팎 사이에서 도둑질하는 교활한 여진족
                              때문이고, 만일 여진을 내쫓고 고구려 옛 땅을 되찾아 성과 요새를 쌓고
                              도로를 만들면 당연히 거란에게 조빙할 수 있음을 강하게 전한다. 그러

                              면서 아주 배짱 있게 “장군이 만일 신의 말을 천자에게 전하면 어찌 가엾
                              이 여겨 흔쾌히 받아들이지 아겠는가?”라고 거란의 임금도 귀를 솔깃하

                              게 만드는 언변을 구사하였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다 아는 내용이다.
                              거란은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갔으며, 성종 13년(994)에 서희장군은 군

                              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쫓아내고 장흥(長興)⋅귀화(歸化) 두 진(鎭)과 곽주(郭
                              州)⋅구주(龜州) 두 주(州)에 성을 쌓았고 이듬해에 또 군사를 거느리고 안의
                              (安義)⋅흥화(興化) 두 진(鎭)에 성을 쌓고 또 이듬해에 선주(宣州)⋅맹주(孟州)




























            현재 한국사(금성출판사)에서 가르치는 강
            동 6주 위치. 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고려 천리장성도 실제로 현지에는 없
            다. 산악 지대에 웬 천리장성을 축조한단 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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