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대한사랑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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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
이와토야마 역사문화교류관 4일차 이토국역사박물관
(岩戸山歴史文化交流館) (伊都國歷史博物館)
타타라지역
큐슈지역의 거대한 전방후원분 중 하나인 이와토야마고
분은 이 지역의 수장이었던 이와이라는 인물의 무덤이
후쿠오카공항
라고 전해지는데, 이와이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6세기
이토국 역사박물관
무렵 야마토 정권에 반대해서 일어난 가장 큰 반란 사건
인 이와이의 난(磐井の乱)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곳의 석상에는 굉장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목이 잘려
나갔다는 점이다. 이는 상대편 석상의 목을 일부러 자를
정도로 강력하게 반발하는 두 세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는 것을 뜻한다. 시대적 배경을 놓고 본다면, 대대로 친
고구려세력이었던 쿠마모토 주변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
지는 친백제계 야마토정권과 대립하였고, 최종적으로는 ▲ 일본에서 가장 큰 청동거울 유물 (지름 46.5cm)
친백제계 세력이 승리하여 친고구려세력을 물리치고 흡 이와토야마
역사문화교류관 다음으로는 이토국이 있던 후쿠오카현 이토국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시간이 별로 없
수한 것으로 보인다.
어 이토국역사박물관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은 없었다. 다만, 이 지역에 이토국이 있었다는 것과
근처에 가야산(可也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러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해 이토
국역사박물관까지 와 주셨던 이종성 박사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목이 잘린 석상과 목 부분 이토국역사박물관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청동거울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윤창열 이사장은 이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이 를 보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일본에 전파된 문명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새로워졌다고 했다.
와이의 세력이 패배한 후 가야가 있던 지역으로 도망쳤다고 하
타타라 지역
는 부분이다. 이것은 임나일본부가 한국에 있었다, 혹은 일본
(多々良)
의 전방후원분이 한국에 전파되었다고 하는 논리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자료관에서도 그렇게 기록된 것을 확 임나일본부설 주장 중 하나가 ‘다다라(多多羅)
인할 수 있었다. 가 다대포’라는 것인데, 다다라의 일본식 발음
하지만, 백제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이 넓디 넓은 큐슈 남 이 ‘타타라’다. 하지만 ‘타타라’라는 지명은 실
부지역을 놔두고, 그것도 적진인 백제 본국이 있는 한반도 남부 제로 일본 여러 지역에 존재한다.
로 향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타타라는 철을 제련할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않는다. 북쪽으로 도망가기보단 남쪽으로 도망갔다고 보는 것 것인데, 타타라라는 지명이 붙은 곳은 사철이
이 훨씬 말이 될 것이다. 실제로 큐슈 남부의 카고시마현 사람 나온다든지, 철광이 있다든지 하는 특징이 있
들은 현재도 고구려가 있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 사람들과 다. 일본 초대왕인 진무왕 또한 현지의 제철 능
얼굴이 비슷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봐도 카고시마현은 야마 력을 지닌 타타라족의 공주님과 결혼하였는데,
토정권으로부터 거의 버림받은 지역이었는데, 그런 대우를 받 이를 볼 때 고대에 철기 문물을 만들 수 있는 능 ▲ 위에서부터 타타라천, 타타라정거장
은 이유가 바로 이와이의 난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 력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 수 있다.
각해보게 된다. 학술조사단은 타타라 강, 타타라 다리, 타타라 소학교 등의 사진을 찍으며 타타라라는 지명이 일
본에 그대로 살아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임나일본부가 한국이 아닌 일본 땅에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60 2023년 12월•월간 대한사랑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