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3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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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의 『천부경』 이해 김철수, 전재우
뇌천궁에 광명(忽然有浮刻于腦天宮)을 체험하고 『광명장』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광명장』을
분석한 결과,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한 『천부경』이 사실이며, 계연수는 실존인물, 해학 이기와 계연
수의 스승과 제자관계, 단학회의 법통계승, 스승의 유촉遺囑으로 편찬된 『환단고기』와 관한 내용
들이 확인되었으며, 『환단고기』의 핵심인 제천사상이 『광명장』에서도 확인되었으며, 『환단고기』
의 역사관이 『광명장』과 일치하고 있으며, 계연수가 왜 『광명장』이라 이름을 붙였는가 하는 이유
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이유립의 주장에 대해서 다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유립의 모든 연구업
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됨이 마땅하다. 그동안 계연
수가 과연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논란도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1917년에 지은 『광명장』을
통해 지금까지 계연수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계연수는 해학 선사의 유촉을 받고나서부터 오로지 고전을 모아서 편집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
다. 지금까지 알려진 무명의 약초를 캐는 무식한 계연수가 아니라 학문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였음
을 알게 되었다. 계연수는 이기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단군세기』(1898)와 『태백진훈』(1898), 『참
전계경』(1899), 『태백일사』(1899), 『천부경요해』(1899)를 간행하였다. 또 1911년에는 『환단고
기』를 30부 간행하였고, 『광개토성릉비문징실』(1912)을 지었다. 1916년 3월 16일에는 《단학회
보》를 간행하였는데 8호까지 발행되었다. 1917년에는 『천부경도해』, 『다물구음多勿矩音』, 『광명
장』, 「계연수기서」를 지었다. 『광명장』을 통해서 계연수가 스승의 유촉을 받고 ‘수집고전蒐輯古
典’한 일련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해학 선사의 유촉을 받고나서 부터 오로지 고전을 모아서 편집하는 것
을 임무로 삼았’던 결과로 1911년 옛 진한(前辰韓)의 땅인 만주 관전현寬甸縣에서 스승의 유명遺命
을 실천한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로 ‘경신참변’과 ‘단학회’의 관련성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
길 기대한다. 계연수가 피살이 되고, 배달의숙과 3천여 권의 장서들이 불태워진 사건은 『환단고
기』와 그동안 계연수가 모았던 귀중한 사료들이 소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야 되리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계연수는 『환단고기』의 공부 방법론으로 『천부경』을 강조하였다. 곧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낭가의 으뜸 되는 경전으로 규정한 것은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기본으로 삼아
익히고 이를 통해 『환단고기』를 알아야 된다는 것을 「범례」에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천부
경』과 『삼일신고』에 대한 이해 없이는 『환단고기』에 대한 이해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환단
고기』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단순히 역사책만이 아니다. 한민족의 원형문화인 ‘교학경문敎學經文’을 담고 있
다. 계연수는 『환단고기』 「범례」에서 “환국·배달과 단군조선(桓檀) 이래로 전해 오며 가르치고 배
워 온 경전의 글들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낭가는 한민족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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