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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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Ⅰ. 머리말
졸본은 고구려의 첫 수도이기도 하지만, 북부여, 졸본부여와도 연관 관계가 있는 곳이다. 부여와
고구려는 현재 한국이 점거하고 있지 않은 영토에 나라를 이루고 있었던 우리 역사의 큰 부분이다.
북부여의 해모수, 졸본부여의 고두막한(동명), 고구려의 고추모는 단군의 칭호를 썼던 태왕으로
서 , 조선, 북부여, 고구려로 계승되는 나라의 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홍산문화(신석기), 하가
1)
점 하층문화(초기 청동기)에서 비파형동검, 세형동검으로 이어지는 고고학적 문화권역이 요서와
요동, 한반도 북남 및 일본 열도까지 이어지는 것과 상응하는 것이다.
현재 평양에 수도를 두고 있는 북한은 (고)조선과 고구려 중심지 평양을 부각시키며 역사의 정통
을 자처하는데 중점을 두고, 졸본에 대해서는 이전 연구와 크게 차이가 없다. 현재 고구려 대부분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중국은 한사군 안에서 고구려가 탄생하고(고구려현), 한의 영향을 받으며
고구려가 성장했다는 논리를 앞세워 고구려 역사를 중국권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사군 자체가
조선 영토 안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감추고, 한사군은 한(漢)의 땅이므로, 고구려는 중국 영
토 안에서 생겨난 변방 속국이라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2)
한국 내 요동, 요서지역 연구가 기존의 성과를 답습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근래 지리 비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초 영역에 대한 연구가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즉 요동, 요수, 압록강 등 그
동안 당연하다고 여기던 분야를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여 성과를 내고 있다. 고구려 수도를 다시
금 정하는 시도도 계속 진행 중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에 의해 비정되었던 졸본, 국내성, 평양 등이
일본 학자들의 신역사 이론에 맞추어 재정립되고, 이병도에 의해 굳어졌으며, 한중일 학자들에 의
해 구체화 되는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구려의 평양(고려 서경)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는 연구
는 학계가 그동안의 연구 결과에 안주해 왔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일련의 지리 연구는 우리 역사 영역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역사 영역
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도 어긋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수도는 그
나라의 중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도읍지가 어디에 위치하였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본고는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인
식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졸본은 북부여와 동부여, 졸본부여와도 관련이 있는 지명
이다. 한이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과의 연관도 살펴보아야 한다. 현도는 위만이 침탈한 조선의
변방 지역과 옥저와도 관련이 있다. 본고에서는 그 모든 연관된 시도에 앞서 과거와 현재, 한국 사
서에 보이는 졸본 관련 내용을 취합해보고자 한다. 우선 조선 이전 시기와 조선의 졸본 인식, 실증
1) 『三國遺事』 「王曆」, 第一東明王 甲申立, 理十一八. 姓髙名朱蒙. 一作鄒蒙. 壇君之子. 태왕은 왕중의 왕 즉 천자, 천제,
황제와 같다.
2) 미다정 외 지음, 서길수 옮김, 『동북공정 고구려사』 (파주: ㈜사계절출판사, 2006); 기수연, 「현도군(玄菟郡)과 고구
려(高句麗)의 건국에 대한 연구」, 『고구려연구회 학술총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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