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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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을 적극 펼쳐 4군과 6진을 설치하고 여진족을 몰아내면서 오늘날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

                 는 온전한 한반도에 해당하는 영토를 개척했다고 가르친다.
                   이런 교과서 서술 행태는 조선 세종 때에 4군과 6진을 개척하기 이전에는 11세기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극복하고 여진을 정벌하면서 축조한 천리장성의 국경사관을 그대로 잇는 것이다. 당시 천
                 리장성은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에서 함경남도 영흥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국경에 관해 기록한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는 고려의 사방 경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
                 다.



                    그 사방 경계[四履]는,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

                    嶺)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
                    어섰다.  1)



                   위 기록은 고려의 국경이 서북쪽으로는 압록(鴨綠)강과 동북쪽으로는 선춘령(先春嶺)이었으며

                 동북계는 고구려 때보다 더 넓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고려의 서북계에 관한 연구 를 통해 지
                                                                                             2)
                 리지 서문에 나오는 ‘압록(鴨綠)’이 오늘날의 ‘압록강’이 아니고 현재 중국 요녕성 ‘요하’였다는 결

                 과가 발표되었다. 조선 세종 때 4군 설치를 통해 오늘날의 압록강을 경계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려 시기의 서북계가 오늘날의 요하 지역까지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 때 6진 개척으로 현재의 두만강까지 진출했다는 조선 전기 동북계에 관한 통설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동북계는 두만강이 아닌 ‘선

                 춘령’을 경계로 삼았고 고구려 시기보다 더 넓었다고 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4군 6진 개척의 당대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의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사 교과서의 6진의 위치 비정의 문제점을 살펴볼 것이다. 조선 전기의 역사지리인식과
                 일제강점기 『조선역사지리』의 국경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 교과서 집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제멋대로 조작한 조선의 국경사(國境史)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버젓이 실린 것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분
                 야라고 생각한다.









                 1) 『고려사』 권56 「지리」1 ; 其四履, 西北, 自唐以來, 以鴨綠爲限, 而東北則以先春嶺爲界. 盖西北所至不及高句麗, 而東北
                 過之.
                 2) 윤한택,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요·금 시기의 압록(鴨淥)과 압록(鴨綠)을 중심으로」 ; 허우범, (2021), 『여말 선초
                 서북 국경과 위화도』 , 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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