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7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P. 217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 연구 신용우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 연구
-문화영토론과 한사군의 위치를 중심으로-
100)
신용우*
Ⅰ. 서론
Ⅱ. 문화영토론과 영토문화론
1. 문화영토론
2. 영토문화론
Ⅲ.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론에 대한 검토와 비정(批正)
1.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론 검토
2. 고구려 건국연대의 비정(批正)에 의한 재정립
Ⅵ. 고구려 건국연대 재설정에 의한 한사군의 위치 비정(比定)
1. 고구려 초기 영역과 한사군
2.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3. 한사군의 위치 비정
Ⅴ. 결론
1. 요약 및 결론
2. 제언
【 초록 】 본 연구의 목적은 만주의 영토권이 우리 한민족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다. 일정
한 영토에 고대부터 축적되어온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는 문화영토론을 기본 이론으
로, 만주와 한반도의 영토문화가 순수하게 우리 한민족에 의해서 형성된 것임을 규명한다. 특히 기원
전 108년에 한사군이 한반도와 만주에 설치되었다면 만주는 물론 한반도의 영토문화에 영향을 끼쳤
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하여, 한사군은 요하 서쪽에 설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한사군의 위치가 요하 서쪽이라는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먼저 그동안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던
고구려 건국연대를 바로 잡은 학설들의 타당성을 검토해서,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217년으
로 바르게 재설정한다. 다음으로 기원전 109년에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할 당시의 고구려 영역
을 밝힌다. 당시 고조선은 이미 열국으로 분리되어 위만조선을 제외하고는 만주에 부여와 고구려
가 건국되고 고구려가 강대국으로 존재했으며, 고구려의 영역이 요하 서쪽 의무려산과 의현 일대
는 물론 시라무렌강 유역까지 달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하여 멸망시켰으
나,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한 무제는 위만조선의 영역을 점령
하고 그곳에 한사군을 세웠다는 것으로 한사군은 요하 서쪽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행정학 박사, 작가, 칼럼니스트, 한국간도학회 학술이사, 대한사랑 학술위원.
217